[천마논단] 늙어야 깨우친다
[천마논단] 늙어야 깨우친다
  • 지홍기 명예교수
  • 승인 2014.07.07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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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홍기 명예교수
 명문대가 판서의 아들로 태어난 완당(阮堂) 김정희는 금석문, 그림과 역사에 깊이 통달했고 초서·해서·전서·예서에서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젊어서부터 영특함에 이름을 날렸으나 중도에 가화(家禍)를 만나 유배당하는 풍상을 겪었으니, 그를 두고 송나라 문인 소동파에 비하기도 한다. 추사(秋史)는 만년에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에서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 속에서만 생활토록 하는 유배의 형’을 받고 회한의 유배 길과 칠흑 같은 생활 속에서도 학식과 인품이 출중하여 수백 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그의 서화(書畵)는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완당이 유배 가던 길에 만난 서예가 창암, 창암의 글 솜씨가 유수체라 하여 그 유연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흐름이 도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던 완당의 서평, 초의 선사를 만나 원교의 대둔사 현판을 떼어 내리게 하고 무량수각까지 써준 완당의 자신만만한 자세, 자신만이 최고라는 생각과 여유 있는 행동……. 그러나 그동안 누렸던 특권층의 삶과는 거리가 먼 척박하고 고독한 유배생활 8년여를 보내면서 입고출신(入古出新)의 세계를 갖추고 비로소 더 이상 어깨가 올라가는 일도 없어지게 되고 힘 있는 골격, 울림이 강한 필획의 면모를 갖춘 추사체(秋史體)가 형성된다.

 9년 뒤 제주도에서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완당은 대둔사를 들러 대웅보전 현판을 다시 걸게 했으며, 창암을 찾았으나 그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러나 완당은 유배지에 찾아온 그의 제자 이상적에게 남긴 불후의 명작 세한도(歲寒圖)를 그려주고 제자의 변치 않는 정성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면서 그림속의 집 앞에 심은 두 나무는 제자 이상적을 의미하며, 집 뒤에 심은 두 나무는 완당 자신을 표현하고 그 중에서 한 나무는 세상풍파에 시달려 겨우 생명만 유지한 채 귀양살이 하는 완당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성한 나무는 그의 정신세계를 나타낸다고 후세 사람들은 서평을 하고 있다.

 유배지에서 풀려난 완당은 강상(江上)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이때 그가 희화한 명작 현판에 단계벼루, 차 끓이는 대나무 화로 그리고 시를 지을 수 있는 작은 집에 만족하는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을 문간에 걸고 그것만으로 자족하겠다는 만년에 순리의 모습이 고결할 뿐이다. 완당의 말년에 남긴 불후의 명작은 ‘최고의 반찬이 두부, 오이, 생강과 나물(大烹豆腐瓜董菜)이며, 최선의 모임은 부부와 자식 손자(高會夫妻兒女孫)’라는 그의 문장과 서예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의 경지만큼이나 위대하지 않는가?

 완당의 세상이 지금보다는 물질과 문명에서 뒤진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몸담았던 시대는 분명히 우리보다 앞서가는 시대정신을 지니고 있었고 참으로 고결한 선비정신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은 수백 년의 시대를 뛰어넘어 후세에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에 갇혀 있다. 즉, 물질이 정신세계를 넘볼 수 없듯이 인간에 있어 정신세계의 이상향(理想鄕)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물질 앞에 해이해진 정신세계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음은 자고로 우리 선조가 가르쳐준 선비정신뿐이다. 당대에 학문적으로 추앙을 받았던 완당 역시 모진 풍상을 거친 연후의 노년에 비로소 검소함을 실천했음은 시사하는 바 크다 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달 2월에 공식적으로 정든 영남대학교 모교 교정을 떠났다. 캠퍼스에서 나보다 훌륭한 후학들을 만났고 학문적으로 인격적으로 출중한 동료 교수들을 만나 함께 했던 시간들에서 참으로 행복했다. 필자는 지난 달 2월에 공식적으로 정든 영남대학교 모교 교정을 떠나, 남은 인생을 살아갈 문경 고향에서 눈 덮인 새재 길을 혼자 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벌써 오간 길이지만 가장 먼저 이 길을 걸어간 누군가의 첫 발길이 궁금해지면서 혹시라도 내가 먼저 올랐더라면 그 모습이 어떠했을까?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 이유는 지난 해 3월부터 불민한 자신이 모교이자 평생 은혜를 입은 영남대학교 캠퍼스에 한 평생 어지럽혀온 허물들을 지우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정리하고자 고민하였기 때문이다.

 서산대사의 야설(野雪)이란 시구 중에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즉, 눈 덮인 벌판을 걸을 때에는 오늘 내가 밟고 간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리저리 함부로 걸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불민한 제가 살아온 길이 곧 마음을 경건히 하고 똑바로 걸어가는 삶을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산대사의 이 시구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 우리가 처한 국가와 대학사회의 현실을 마치 예견이라도 하듯이 살아남아 우리들에게 경구로 들려오고 있다. 이 말씀은 김구 선생께서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하여 더욱 인구에 회자되는 글이기도 하다. 지도자야말로 올바른 길로 국민을 인도해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러하다는 뜻인가 싶다.

 필자는 지금까지 학생들 앞에서 군림만 해오면서 연구는 소홀히 해왔고 교육은 권위주의로 비추어져 왔으며, 학교를 앞세운 봉사는 개인의 보신주의로 흘러왔다. 자신은 베품의 철학도 실천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만을 주워 담기에 급급해 왔으니, 한 없이 부끄러울 뿐이다. 결국은 대학사회에서 지고의 가치로 지켜야 할 교수로서의 ‘참 스승의 상’을 실천해오지 못했다. 자신이 함부로 걸어온 대학생활에서 교육자로서의 수범을 보이지 못했고 이제는 바로잡을 시간도 없게 되었으니, 실로 한심스럽고 크나큰 죄책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로마제국의 영웅과 호걸, 문인과 예술가들이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명멸했으나, 여전히 로마는 문자와 법률, 문화와 예술을 통해서 지금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역사가들은 평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이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어 우리 영남대학교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지만, 동료 교수님들의 학문적 역량과 학교를 사랑하는 교직원님들의 헌신은 기어코 난국을 혁신을 통해서 극복하고 끝내는 재도약의 계기가 되어 우리 영남대학교가 대학의 역사에 빛나는 금자탑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사회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수준 높은 책무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행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앞서 모교로부터 지금까지 남다른 영광만을 누려오면서 학생들 위에 군림만 하고 이성의 전당인 캠퍼스를 함부로 걸어왔음을 크게 반성하고 있다. 필자가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의 독립성을 빙자하여 자기중심에 도취되고 자기중심적 주관에 치우쳐서 모교의 명예에 흠결을 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아직까지도 학창시절 모교에서 받았던 장학금과 사랑을 다 돌려주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일깨워 주었던 모교, 나의 가족들이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던 직장, 앞으로의 여생을 연금으로 보장해준 나의 조국에 무한한 감사를 보내면서, 언젠가는 졸업생으로서, 재직했던 사람으로서, 한 국민으로서 보답하는 길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을 다짐해본다.

 이제 노욕의 세월을 마감하고 참신한 젊은 교수님들을 비롯한 열정을 지닌 교직원께 무거운 짐을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게 되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이제 모교를 떠나면서 바람이 있다면, 우리 대학 구성원인 학생들은 더욱 애교심을 지니고 국가에 충성하는 청년이 되어 교학상장(敎學相長)을 실천하는 주인공이 되어 주리라 의심치 않으며, 우리 교직원들은 보다 높은 도덕률과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실천하는 참 스승으로서의 대학사회 표상이자 등불이 되어 주시리라 믿는 바이다. 율곡(栗谷)과 만해(萬海)가 즐겨 쓰셨던 묘합(妙合)이란 의미처럼 한번 만났다, 헤어졌다, 또 다시 만나면 ‘큰 하나’가 된다는 이 뜻이 오늘 필자의 마음속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비록 떠나지만 다시 만나는 날 우리는 매우 ‘큰 하나’가 될 것을 소망하면서, 필자는 나력(裸力)과 잔향(殘香)으로 모교의 자존심을 세우고 명예를 지키는데 앞장서 가리라 다짐해 본다.

 우리 영남대학교만큼 아름다운 교정, 이성적인 분위기, 자랑스러운 학문의 요람이 또 어디 있을까? 평생을 배우고 가르쳤으니 이제 다시 처음 시작했던 학생과 동문의 신분으로 돌아가 벚꽃 만발한 따스한 봄, 작열하는 여름밤의 시원한 캠퍼스 잔디밭, 오곡이 익어가는 풍성한 압량 벌, 눈 덮인 백설 위에 홀로 우뚝 선 22층 도서관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예술이 융성 발전하고 따뜻한 정감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겨울을 뒤로하고 이제 새봄을 맞이하게 될 캠퍼스에 희망과 성취의 그날을 기원하면서, 모교가 그리울 때면 가끔 찾아와 숭엄(崇嚴)한 학풍을 폐부 깊숙이 들여 마시고 전공하지 않았던 모르는 분야의 인문학 연찬(硏鑽)에 더 귀 기울이며, 가야할 융합학문(融合學問)의 오솔길을 느긋하게 걷고 모교의 발전을 멀리서 주야장창 기원하면서 살아가리다.

 “늙어야 깨우친다”는 말을 되새기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대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권리에 앞서 의무가 먼저”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최선을 다한 자에게 결실이 주어지는 법은 역사의 순리다. 마지막으로, 한 죽마고우(竹馬故友)가 며칠 전에 나에게 가르쳐준 고사, 교룡운우(蛟龍雲雨)란 이야기, 즉 우리 영남대학교가 “교룡(蛟龍)이 운우(雲雨)를 만나듯, 무궁 하라 모교(母校)여! 웅비하라 천마(天馬)여!”란 말로 평생 은혜 입은 모교에 바치는 인사로 대신하는 바이다. 퇴임할 즈음에 후회하는 어리석음은 필자가 마지막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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