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칼럼] 자아 찾기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익명칼럼] 자아 찾기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 익명
  • 승인 2014.07.0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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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自己)=1. 그 사람 자신 2. 인식과 행위의 주체인 자아, 계발(啓發)=일깨우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이 글은 자기계발서 열풍을 비판하려는 아주 흔한 글이다. 하지만 당신이 마침 읽고 있던 자기계발류의 책들을 무턱대고 버리라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단지 당신에게 진정으로‘자아’를‘일깨우’고 있는 자기계발서를 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던지려 한다. 이 말인즉슨, 현재 대형서점 자기계발서적 코너에 가서 CEO의 경영마인드를 가르치거나 일주일 만에 인문학자, 화술의 달인, 마인드컨트롤 능력자가 되는 법 가르치는 책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냐는 말이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자아를 성장시키고 싶은 주체적인 욕구가 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탐구 영역 확장의 욕구가 폭발하는 시대가 되었고, 기존 아카데미즘에 반발하여 등장한 낭만주의는 주체성, 진보성을 가장 잘 머금고 있는 혁명적인 사조였다. 대표적인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한데 뭉쳐 있으면서도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민중을 발견할 수 있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여신으로 상징되는 정의, 자유, 혁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의지를 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체적인 의지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현대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힘이 된다.

 그러나 현재 자기계발이라는 이름하에 쏟아져 나오는 각종 매체는 이러한 진보성을 잃어버렸다. 개인능력을 업그레이드하고 효율적인 전략으로 최대의 이익을 끌어내는 방법들, 아픔은 누구나 겪는 것이고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나약하다는 말들.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이야기이지만 단지 그뿐, 진정한 주체는 사라지고 기존의 신자유주의 담론을 재생산하며 개인을 매몰시켜 버리는 이야기다. 이는 군국일본시대에 후지타 쓰구하루 등 화가들이 그린 전쟁화와 다를 게 없다. 마치 혁명을 가장한 비장함과 애국심을 고양시켜 나라의 영광을 도모하듯, 나는 경영전략을 배우고 현란한 화술을 터득해서 자본의 이익창출에 기여를 해야 한다. 효율적인 기술자가 되는 것이 진짜 자아발견이라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화, 철학, 청춘, 아픔, 잘 살고 싶은…. 책을 팔기 위해서라면 활용하지 못할 말이 어디 있을까. 다만 자기계발서적 코너에 떠돌아다니는 단어들의 가벼움은 참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 단어를 앞에 놓고 수많은 밤을 지새웠던 지식인들의 고민과 수많은 사람들의 정체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기존 담론만 재생산하는 매체가 가득한 것이 현실이다. 범람하는 껍데기 낭만주의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며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까?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여전히 어렵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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