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이야기] 그런 날이 있다
[이유있는 이야기] 그런 날이 있다
  • 여현정 대학부장
  • 승인 2014.07.05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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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은 그랬다. 아침부터 별로 느낌이 좋지 않았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니 갑작스럽게 비가 내렸다. 그날따라 우산도 챙겨오지 않았다. 게다가 며칠 전엔 왼 발을 다쳐 깁스까지 한 상태였다. 친구에게 우산을 빌려 겨우 집에 가는 길에 학생증을 잃어버린 걸 깨닫고는 찾으러 돌아다녔다. 결국 학생증도 찾지 못하고 몸은 젖은 채 집에 가는 길, 땅인 줄 알고 밟았던 것은 물웅덩이였고 깁스한 발까지 완전히 젖은 후에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필자에게는 ‘그런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아주 가끔 찾아온다. 아침부터 일이 꼬이는 날. 누구나 그런 날을 겪었으리라 생각된다. 정말 일이 풀리지 않는 날, 엎친 데 3번 정도 더 덮친 날.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 ‘그런 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그런 날을 직설적으로 싫은 날이라든지 더럽게 재수 없는 날이라 부르면 상황이 더 안 좋아 질 것만 같았다). 그런 날이 찾아올 때마다 기분은 땅으로 꺼질 것만 같고, 하루 종일 우울해진다. 집에 돌아와서야 깊은 한숨을 쉬며 침대 속으로 들어가 그런 날을 위로해본다. 고작 한 달에 한 번꼴, 혹은 몇 달에 한 번꼴로 잘 찾아오지 않는 ‘그런 날’덕분에 엉망진창이 되는 기분이 든다. 이렇듯 나는, 그리고 당신은 겨우 하루에 기분 좋았던 그 전날이나 이전의 어떤 날은 잊고 만다. 이러한 사실에 인간은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생각해보자. 친구에게 100번의 좋은 말을 들어도 1번 기분이 상하는 말을 들으면 그 친구가 좋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1kg의 증가에도 극도로 민감해지며, 배고픔에 쉽게 짜증을 낸다. 지나가다 본 사람의 좋지 않은 눈길조차 신경이 날카로워지며, 옷에 묻은 얼룩 한 점에 온종일 투덜댄다. 이런 감정들이 조금씩 모여 스트레스를 받고 이러한 스트레스는 몸을 괴롭히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복통이나 두통을 맞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듯 인간은 아주 작은 유리조각 같은 감정에도 피를 흘리고 아파한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며, 모든 것을 짐작하거나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갑작스럽게 닥치는 ‘그런 날’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많은 감정들이 뾰족한 유리조각이 아닌 부드럽게 다가올 수는 없을까.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불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우리는 아주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작은 것에도 쉽게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자신이 기대하는 커다란 것 말고, 일상생활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맛보는 건 어떨까. 필자의 어머니는 아침에 모두가 나간 집에서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이 자신의 큰 기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듯 일상에서 찾는 작은 즐거움이 나약함으로 갈대같이 흔들리는 당신을 조금 붙잡아 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런 날’에도, 그렇지 않은 날에도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느끼는 따뜻함과 즐거움, 행복함을 생각해보자. 평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무엇보다 크게 다가올 것이라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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