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독파거(快犢破車)] 내 인생에서 나는 주인공인가? 조연인가?
[쾌독파거(快犢破車)] 내 인생에서 나는 주인공인가? 조연인가?
  • 김명아 문화부장
  • 승인 2014.07.05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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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나라 환공(齊桓公)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대청 아래에서는 일흔 살이 다 된 편(扁)이라는 이름의 노인이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다. 책을 읽다 편의 솜씨에 감탄하며 웃는 황공에게 편은 가까이 다가가 “왕께서는 지금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성현의 말씀이니라.” “그 성현이 지금 살아 계십니까?” “아니다. 이미 돌아가셨느니라.” “그렇다면 왕께서 지금 읽으시는 것은 성인들이 남긴 찌꺼기로군요. 저는 수레를 깎는 놈입니다. 제가 수레바퀴 구멍을 깎을 때 망치질을 너무 느리게 하면 구멍이 헐렁해서 바퀴살이 꼭 끼지 않고, 또 너무 세게 하면 빡빡해서 굴대가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수레바퀴를 깎는 이런 기묘한 기술은 자식에게도 가르칠 수 없고 자식도 그것을 제게서 배울 수가 없어, 나이 일흔이 되도록 이렇게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이는『장자』의 천도 편에 있는 한 대목이다. 편은 왜 성인들이 남긴 말씀을 찌꺼기라고 했을까? 바로 우리의 생존이 벌어지고 있는 공간과 우리의 지혜가 발휘되는 공간은 이론의 세계가 아닌 사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론은 사건을 정리해 놓은 것이며 우리가 이론을 공부하는 것은 다음 사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예측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마치 효용성이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주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난 다음의 그 이론은 찌꺼기일 뿐이다. 그럼 우리는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 것일까? 망치질을 느리게 해도 안 되고 더 세게 해도 안 되며 적당하게 깎게 해주는 고유한 힘은 자신에게 갖춰져 있는 감각의 완성도에 있다. 이념에 빠져있는 우리가 이 세계에서 발을 딛고 서 있을 곳은 사건이며 감각이다. 즉 자신의 사건에 집중해야 한다.

 자신의 사건에 집중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기준의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기준은 보편성과 객관성으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며 외부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는 사람은 기준의 생산자로 등장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상 모든 창조적인 것은 모두 엉뚱한 질문에서 탄생했다. 질문은 질문을 했다는 사실만 의미가 있지 질문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옳고 그름이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이미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에 맞느냐 안 맞느냐이다. 그 기준은 엉뚱한 질문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크고 계속된 노력으로 생산됐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조연으로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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