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논단] 봄을 보내다
[천마논단] 봄을 보내다
  • 박종홍 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4.07.05 2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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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에 민족시인 이상화는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겼다”라고 읊었다. 일제의 강점으로 조국을 빼앗겼기에 계절의 봄조차 누릴 수 없게 되었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외적의 힘이 아니라 자연의 힘에 의해 매년 조금씩 봄을 잃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도 이러한 자연을 조절하거나 통제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짧아진 봄이라도 최대한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대학교의 넓은 교정에는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도시의 삭막함과 답답함에 짓눌린 우리들에게 교정의 꽃과 나무들은 거대한 숨구멍이 되어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정서의 균형감을 잡아 준다. 우리 졸업생들은 사회에 나가 자리 잡고서 자신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여 인정을 받는 이가 많다. 이것은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이런 넓고 아름다운 교정에서 청춘을 보낸 덕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짧은 봄을 못내 아쉬워하기 전에 이때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봄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많다.

 먼저 봄은 꽃들의 잔치이다. 우리 교정에는 매년 매화와 산수유가 피고 난 뒤에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이어서 벚꽃이 핀다. 또한 이들이 지고나면 마로니에가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런데 올해는 3월 하순의 고온으로 그것들이 열흘 정도 일찍 꽃을 피웠을 뿐만 아니라, 피어야 할 순서를 잃어버리고 한꺼번에 피어나 서로 아름다움을 경쟁하고 있다. 차례차례로 피어나는 꽃을 보는 즐거움이 없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빛깔과 모양의 꽃을 한 번에 보는 일도 의외의 수확이라 할 것이다.

 지난 주 월요일에는 3학년 학생 몇 명과 함께 본관 뒤편의 까치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벚꽃이 활짝 핀 ‘러브로드’를 산책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 중에 한 여학생이 자기는 꽃이 피어 있는 이 길을 처음 걸어본다고 했다. 이유는 이 길을 동성 친구끼리 걷거나 혼자 걸으면 4년 동안 애인이 생기지 않는다는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말 때문이란 것이다. 필시 애인이 있는 학생들이 자기들만 이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고자 헛소문을 낸 것일 거라며 그 소문의 황당함에 함께 웃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우리 학생들 중에는 이렇게 화사한 교정의 꽃 잔치를 남의 일로 스쳐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이라도 학교의 구석구석으로 4월의 꽃을 보기위해 발걸음을 내디딜 것을 권한다.

 둘째로 봄은 삶의 출발점이다. 아침이 하루의 시작이듯이 봄은 한해의 출발이다.  그 일년이 백년의 출발이 되듯이 봄은 우리 삶의 출발이 된다. 우리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다음 일도 계속 꼬이고 나쁘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봄에 출발을 제대로 해야 우리 삶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절실하게 소망하면 그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을 절실하게 소망하는 사람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능동적으로 찾아 나설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기에 누구보다도 소망을 이룰 확률이 높아 질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소망을 실현할 출발선에 선 학생들은 먼저 선배나 교수에게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갖가지 시행착오들을 먼저 겪었기에 학생들이 먼 길로 돌아가거나 가다가 다른 길을 찾지 않도록 지름길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봄은 희망의 샘이다. 호기심 많은 여자, 판도라의 상자에 유일하게 남은 것이 희망이었다.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삶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삶이라 할 수 있다. 봄은 언제나 겨울을 이기고 어김없이 찾아온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절망도 희망을 항상 대기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부딪치는 갖가지 어려움으로 좌절하거나 낙담할 때에 이러한 슬픔과 고통은 다음의 웃음과 평안을 위한 과정이자 시험으로 생각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꽃이 진다하여 바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꽃이 짐으로써 새로운 열매가 맺어 질 수 있다는 점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봄은 희망의 샘물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넣어 주면서 열매가 알차고 맛있게 익도록 해줄 여름의 폭염을 견딜 수 있게 하고 가을의 결실도 약속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봄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가 봄을 보내야 한다. 그저 웃으며 담담히 봄을 보내주어야 한다. ‘별 그대’에서 천송이가 도민준을 자기 별로 보내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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