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칼럼
익명칼럼
  • 익명
  • 승인 2014.07.05 2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학기의 시작이다. 교정의 학생들은 새로운 환경에 설레기도하고 처음 듣는 수업에 들뜨기도, 거창한 목표를 다시금 마음에 품으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꼽아보기도 한다. 동시에 지난 학기 야무지게 시작했지만 제대로 끝맺지 못한 기억도 떠올려 본다. 욕심내어 전공 수업을 꽉꽉 채우고 대외 활동도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토익 고득점을 달성하고자 했던 우리들의 지난 학기. 목표하였던 바를 끝내 달성하고 달콤한 성취감에 빠져든 이들도 있겠지만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게으른 습관과 판단 착오 등으로 쓰디 쓴 후회를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학기가 끝나고 성취감을 느끼는 이들의 거의 대부분조차도 각자 한 번쯤은 초심이 지속되지 못한 탓에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한 후회를 느껴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초심을 잃어버리는 순간을 아쉬워한다. 초심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한 시점엔 작아보였던 구멍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넓어진다. 특히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 되어서는 그 구멍 새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온다.

 그런데 초심을 잃어버리는 것은 항상 나쁘기만 할까? 한편 잃어버려야 하는 초심도 있지 않을까? 너무 낡아 빛바랜 첫 마음은 새로운 천으로 덧대야 하고 잘못 꿴 첫 단추는 풀어 헤쳐 다시 잠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건강한 초심을 얻기 위해서는, 묵은 초심은 버리고 진정 새로운 초심을 지닐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새로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위험을 동반한다. 우리는 출발선에서 언제나 긴장하고, 쉬이 풀리지 않는 뻣뻣한 몸 때문에 쉽게 넘어지기도 한다. 하물며 전과 다른 마음을 먹고 남이 한참 달려온 길을 후발주자로 따라가는 사람의 마음은 더욱 불안할 것이다. 아무리 초연한 사람이라도 나이라는 조건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고 그러한 조건을 아예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성취하는 것을 추구한다면 어느 순간 빠른 성취의 압박에 못 이겨 초반에 먹었던 마음을 고수하고 자신의 꿈을 박제된 무엇으로 여기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하지만 남보다 늦더라도 가야할 길을 가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박차고 나가는 용기가 있었던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1984년과 동물농장의 작가로 잘 알려진 조지 오웰과 안락한 삶을 버리고 의료 봉사 활동을 해온 슈바이처, 그리고 아이폰을 개발하여 인터넷과 인간 생활의 거리를 좁힌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조지 오웰은 이튼 학교를 졸업한 뒤 버마의 경찰관으로 지내다가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소설가로서의 새 출발을 하였고, 슈바이처는 신학을 공부하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인류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의학을 배워 의료 봉사를 시작한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 재학 중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고 학교에서 나와 새롭게 회사를 차렸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원래 품었던 초심은 버리고 자기 자신만의 꿈을 위해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낸 사람들이다. 만약 조지 오웰이 경찰관으로 임관된 날의 초심을 떠올려 소설가가 되길 포기하고 스티브 잡스가 대학에 입학할 때 대학 생활에 대해 품었던 초심을 저버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1984년이 그려낸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에 대해서도 손 안에 인터넷이 들어오고 나아가 인터넷을 입을 수 있는 발상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기에는 각자 자신이 가졌던 꿈을 점검해보고 불필요한 활동을 정리하여 다시금 깨끗한 초심을 지닐 기회를 가져보자. 잘 버리는 사람이 잘 채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묵은 마음을 정리한 공간에 이 봄의 새로운 초심을 잘 두어 이번만큼은 이 초심을 오래오래 간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묵은 초심을 귀찮고 힘들어서 하기 싫은 해묵은 과제와 구분하지 못하여 스스로에게 적당한 핑계를 주다가는 훗날 돌이키기 어려운 후회를 하게 될 것이므로 이러한 사실은 꼭 명심하여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