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형제, ‘무일푼’으로 북미대륙을 횡단하다
자전거 형제, ‘무일푼’으로 북미대륙을 횡단하다
  • 천정우 기자
  • 승인 2014.07.01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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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형제를 만나다

 
 젊음의 패기로 도전하기 까지

 LA에서 뉴욕까지. 북미대륙 21개주를 72일 동안 7천200km를 횡단한 송근녕(특수체육4), 송근우(기계3) 형제. 지난해 우리 대학교 정시모집 광고에 등장하며,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또한 이들은 대형 배너를 통해 독도, 제주도, 아리랑, 비빔밥 등을 홍보하며 400여 명의 사인과 메시지를 받아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교회나 소방서, 일반 가정집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잤으며, 돈을 아끼기 위해 1달러짜리 버거로 식사를 했다. 화씨 117도에 달하는 네바다의 살인적 더위도, 해발 3천870m의 로키산맥도 그들을 가로막지 못했다. 자전거 형제 ‘쏭 브라더스’를 만나 그들의 ‘무일푼 북미대륙 횡단’도전기를 들어보자.

 Q. 횡단 이후 약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A.
학교에 처음 복학했을 때는 여행 후유증을 겪었다. 70여 일 간의 북미대륙 횡단 동안 원시인들처럼 생존에 급급했더니, 복학해서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성적도 잘 안 나오더라. 또한 횡단 이후 언론에서도 연락이 많이 왔는데, 좋기도 하면서 부담도 됐다. 요즘은 평범한 학생으로서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
 Q. ‘무일푼 북미대륙 횡단’을 계획하게 된 이유는?
 A.
이전까지는 그다지 특별하거나 도전적인 경험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20대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성공 후에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국내에서 자전거 횡단을 해 본 적은 있었지만, 해외로 나간 것은 처음이다. 평소 유명 모험가들의 미국 횡단기를 보며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Q. 왜 무일푼이었나?
 A.
미국 횡단을 무일푼으로 완주했다기보다는, ‘준비’를 무일푼으로 시작했다. 평범한 대학생이라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돈이 없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물품 협찬 등을 받고 가는 경우도 있어서, 이러한 방법으로 무일푼 여행을 계획했다. 또한 공모전에도 도전해 자금을 모았다.
 Q. 협찬받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A.
협찬받기 정말 힘들었다. 거절을 많이 당했다. 기획서를 보내라는 곳도 있었으나, 보내도 읽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읽어도 답장이 거의 없더라.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려니 생각하고 계속 연락했다. 전화만으로는 안 돼서 회사 본사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거절당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손해가 가거나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도전했다. 대학생이지 않은가(웃음). 그 결과 협찬을 해주겠다는 곳이 생기더라. ‘빈폴 아웃도어’, ‘레드불 코리아’, ‘판다 바이크’, ‘루디 프로젝트 코리아’에서 협찬을 받았다.
 Q. 공모전에서의 성과는 없었나?
 A.
‘바이크 리페어샵’, ‘코리아 코로나’, ‘노스페이스’가 주최한 공모전에서 수상해 기본 경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바이크 리페어샵’에서 수상을 못 했더라면 도전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바이크 리페어샵’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이 공모전은 어떠한 기획안에 대해 페이스북 ‘좋아요’개수로 수상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북미대륙 자전거 횡단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을 올렸다. 20일간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내 중앙도서관 등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부탁했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 대학교 인근의 가게들을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부탁했던 것 같다.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Q. 이번 횡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A.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루하루 많은 도움을 받았고, 우리의 생존이 걸려있었기에 더욱 감사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난생 처음 보는 우리에게 돈도 주고 밥도 줬다.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고 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도움을 받은 우리로서는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또한 외국에 살고 있는 한인 분들에게도 감사했다. 우리나라는 동문이 잘 발달돼 있다. 토론토에서 우리 대학교의 몇몇 선배들이 우리를 위해 모이기도 했다. 삼겹살도 사주셨는데, 정말 힘이 났다. 다시 한 번 우리 대학교 동문의 힘을 느꼈고, 그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Q. 독도, 아리랑, 비빔밥 등을 홍보하며 민간인 홍보대사의 역할도 했는데.
 A.
횡단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당시, 독도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독도를 홍보할 방안을 생각했다. 고민하다 보니 기왕이면 가는 김에 한국을 알리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배너를 통해 독도, 아리랑, 비빔밥 등의 내용을 넣었다. 큰 홍보는 아니었지만,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Q. 프로젝트 중에 힘들었던 점은?
 A.
무일푼으로 시작해 자금을 마련하고 협찬을 구하느라 정작 여행 준비는 미흡했다. 서부 쪽은 거의 사막이라 나뭇잎이 가시처럼 뾰족해서 하루에 5번이나 바퀴에 펑크가 나기도 했다. 자전거가 앞으로 안 나간다고 생각하니 심적으로 힘들었다.
 또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여행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에 우리가 여행 가야 할 다음 목적지가 어떤 곳인지도 모를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총기사고가 잦지 않은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텐트에서 잘 때도 칼을 주머니에 차고 잤다(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하고 위험했다.
 Q. 횡단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것 같다. 여행갈 때 좋은 팁이 있다면?
 A.
맥도날드를 찾는 것을 추천한다. 미국은 대부분 지역에 맥도날드가 있다. 우리도 와이파이를 쓰기 위해서 주로 맥도날드를 찾았다. 잠잘 곳이 딱히 없다면 교회나 소방서가 비교적 안전하다. 텐트를 가지고 가더라도 밖에 무작정 텐트를 치고 자는 게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 양해를 구하고 마당에 치는 것이 안전하다.
 Q. 목표지점에 도착하고 나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A.
목표지점인 뉴욕에 도착한 후,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둘 다 너무 지쳐있었다. 70여 일 동안 매일 긴장하며 생존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이제 살았구나’, ‘수고했다’는 안도의 마음이 더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뉴욕에 도착한 후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Q. 횡단 이후 주위 반응은 어땠나.
 A.
친구들의 경우 ‘자랑스럽다’, ‘멋있다’, ‘부럽다’는 등의 반응이 있었다. 언론에서도 연락이 많이 왔고, 다른 도전을 할 때 후원을 해주겠다는 연락도 받았다.
 사실 미국 횡단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부모님께서 우리를 걱정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씩 해나가는 모습에 응원해주셨고, 귀국 후에는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셨다.
 Q.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누구나 이러한 도전을 꿈꿀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 하고 대부분 실천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주목받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강점이자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 원인이라고 한다면 ‘행동력’인 것 같다.
 Q. 앞으로 다른 도전을 할 계획은 있는가?
 A.
‘무일푼 북미대륙 횡단’과 같은 도전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하지만 또 다른 도전을 하기에는 지쳐있어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Q. 앞으로의 진로는 정했나?
 A. 근녕:
‘무일푼 북미대륙 횡단 프로젝트’이후 어떠한 것을 기획하는 것에 큰 재미를 느꼈다. 스포츠도 좋아하기 때문에 현재는 스포츠 마케팅 분야를 알아보는 중이다. 또한 나는 ‘경험주의자’이다. 항상 경험을 해보고 무엇이든 선택한다. 앞으로 여러 공모전에 도전해보고 나와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스포츠 마케팅 분야로 계속 나가고 싶다.
 A .근우: 나만의 인생을 살고 싶다. ‘취업을 하면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고, 창업을 하면 내 인생을 사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취업을 하더라도, 나중에는 창업을 해서 나만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Q. 도전을 망설이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보통 사람들은 어떤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이리저리 재보는 경우가 많더라.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야하기 때문에 걱정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다 제쳐놓고 무엇인가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갖는 것을 추천한다.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실패도 한 과정이다. 스티브 잡스도 자신이 창립한 회사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은 성공했다. 실패 속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 실패를 분석하고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실패한다고 해도 잃을 게 없다. 우리는 아직 대학생이지 않은가.
 이 프로젝트와 같은 특별한 도전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쏭 브라더스’는 답했다. “우리 주변 대부분이 그런 말을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도전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기자가 만난 송근녕, 송근우 형제는 그저 평범한 학생들이었다.‘행동력’이라는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무엇인가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 ‘쏭 브라더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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