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우리들의 마지막 숙제
살아남은 우리들의 마지막 숙제
  • 영대신문
  • 승인 2014.05.1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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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계절에도 우리는 꽃향기를 맡을 수 없다. 봄의 여왕인 벚꽃보다, 귀족 같은 자목련보다 더 짙은 라일락 꽃향기마저 숨죽인 요즘, 향불 태우는 내음만이 지천에 가득하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지 스무 이레가 지났지만, 파도를 삼키고 터져 나오는 팽목항의 울음은 언제 그칠지 기약도 없다.

 이백육십구명의 사망과 서른다섯명의 실종자를 추모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전체가 이번 참상에 대하여 경악하고 있는 것은 세월호의 침몰이 천재지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재에 의한 것임이 분명해지면서이다.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인터넷 속도 세계 1위, 수출 규모 7위, 무역 규모 8위, 국민총생산량 세계 15위인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세월호의 비극은 한국의 세계적 위상에 견주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의 참상은 한국에서 일어났고 우리 사회는 지금 그 원인제공자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배도 버리고, 승객도 버리고, 팬티바람으로 줄행랑친 선장도 선원들도 원인제공자이고, 노후화된 배를 구입하고 구조를 바꾸고 화물을 적정 이상으로 운송하게 했던 선박회사도 잘못이고, 기업가 정신도 없이 그 회사를 교묘하게 소유한 경영인들도 일차적 원인제공자들이다. 그리고 최초 신고 이후 출동까지 긴급했던 순간에 관여된 국가기관들과 긴박했던 구조의 순간에도 국민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해경들도 공분의 대상이다. 나아가 선박회사와 모종의 연결고리가 있는 한국선주협회 그리고 부실한 선박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선박안전기술공단과 이 모두를 관할해야 할 해양수산부 등이 참상의 원인 제공자들일 수 있다. 특히, 사고 이후 보여줬던 정부의 무능력한 대처도 분명 분노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이들에게 마구 분노하고 작두질을 하듯 책임을 묻는다면, 이 땅에서 제2의 세월호 참상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과연 그럴까?

 세월호는 한 척의 부실한 선박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은 아닐까? 명예를 추구해야 할 사람들이 명예를 이용하여 돈을 추구하려는 사회,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 권력을 이용하여 돈까지 추구하려는 사회, 이 땅의 수많은 학생들을 열등감과 우울증을 겪게 하고 패배자로 마구 낙인찍는 사회, 대학을 취업 학원으로 전락시키고 대학 교수를 취업 알선자로 전락시키는 사회, 돈의 힘으로 교육을 통제하는 사회,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얽고 또 엮어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그들만의 상식을 만들고, 그들만의 기본을 만드는 사회, 돈의 권세 앞에 생명의 가치가 무력해지는 사회, 양심은 무늬이고 이익만이 진심인 사회, 서푼짜리 수치심마저 사라져가는 사회, 건강한 공동체적 가치와 상식이 무너져 내린 대한민국의 참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최근 사례로 ‘원자력 비리’가 있지 않은가?  

 세월호의 진상을 들여다보면 원자력 비리와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직업윤리도 없고, 생명의 존귀한 가치도 모르고, 도덕적 기업가 정신도 없고, 건강한 리더십도 없고, 오로지 돈의 권세만 추종하는 ‘직업꾼’과 ‘사기꾼’들이 우리 사회에 득세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을 반영하는 “한국호”의 현재적 모습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공분은 세월호 참상의 원인 제공자를 찾아 단죄하는 데서 머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호에 승선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나는 과연 내 직업의 사회적 직분에 최선을 다해 왔는가? 나는 과연 돈의 권세 앞에 굴함이 없었는가? 나는 과연 나 자신에게 성실했는가?

 세월호의 아픔을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가 건강해야 하고,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건강해야 하고,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내가 건강해야만 한다. 이제부터라도 공짜를 너무 좋아하지 말고, 빨리 빨리라는 말도 자제하고, 공공질서를 지키며 배려와 양보도 하고, 과잉 감정도 절제하고, 입신양명이 아닌 자기 성찰과 공익에 헌신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혜택이나 특혜를 삼가 두려워하고, 사사로운 청탁을 스스로 자제하고, 공익과 사익을 분명하게 구별할 줄도 알아야겠다. 그리하여 내가 내 자리에서 참으로 건강해질 때, 세월호의 참상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세월호의 억울한 희생자들이 살아남은 우리 모두에게 남겨놓은 마지막 숙제임을 기억하여야겠다. 

세월호 침몰로 희생한 모든 분들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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