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망언과 단순 이분법적 세계관
위안부 망언과 단순 이분법적 세계관
  • 영대신문
  • 승인 2014.03.1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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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1월 경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폴란드를 방문하여 나치의 강제수용소가 있는 아우슈비츠(Auschwitz)에서 헌화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그는“깊은 슬픔으로, 하지만 평등과 인간의 존엄, 그리고 평화의 세상을 이루겠다는 커다란 결심”이라고 방명록에 적었다고 한다. 기사를 끝까지 다 읽기도 전에 독일의 총리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가 떠올랐다. 1970년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를 방문하여 바르샤바 게토 앞에서 나치의 만행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헌화하고 깊은 사죄의 의미로 무릎을 꿇었다. 브란트 총리의 이 일이 있고 난 후 독일의 총리나 대통령, 외교 장관은 폴란드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발트 3국 등을 방문하면 나치의 범죄에 대해 사죄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앞서 언급한 사례와 사뭇 다르다. 현재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있으며, 헌법 개정을 통한 자위권 발동 등 민주적 절차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행동을 일삼고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의 반식민지 항일운동을 싸잡아 무시하거나 극우주의자의 혐한시위를 방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연이어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망언이 도를 넘고 있다. 일본 중의원인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의원이 어느 강연회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연설을 했다고 한다.‘일본군 위안부 중에는 일본 여성도 있었다. 일본 여성은 자신을 위안부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여성은 일본인과 전혀 다르다. 부끄러움이라고는 전혀 없다. 거짓말만 내뱉는다. 인종이 다르다고 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다.’이제는 사실을 부정하는 수준을 넘어‘인종’을 들먹이는 실정이다. 나카야마 의원의 연설은‘거짓말만 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나쁜) 한국 여성과‘위안부에 동원되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착한) 일본 여성으로 나누는 단순 이분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대표적인 포퓰리스트들의 수사법으로서, 비논리적이고 감정 자극적인 위험한 정치 선동의 일종이다. 나카야마 의원과 같은 포퓰리스트들은 주로 타자에 대해 편견과 고정관념에 근거하여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이들은‘흑백, 선악, 찬반, 옳고 그름, 나와 너’라는 단순 이원론적 대립의 구도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러한 연설들은 대부분 즉흥적이고 논리적으로도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에 단정적이고 직설적일 뿐만 아니라 저급하거나 거친 표현들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나카야마의 연설 내용은 이념적으로 각인된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서 타자(他者)를 적으로 봐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갖고 있는 적대적 이미지는 타자 집단(“인종”) 전체에 대한 이미지이며 그 집단(“인종”)을 하나의 범주로 간주해서 대상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적대적 타자상(像)은 실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허상의 이미지로서, 그가 속한 정치 집단이 의도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나카야마의 연설에서 보듯이, 이러한 포퓰리스트들의 정치 수사적 전략은 특정 집단에 대해 피해의식이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우리 편’으로 끌어 들이고 연대의식을 고취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쓰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화합과 상생의‘하나 됨’은 요원해진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기인한 편협한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과거사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가능할 것이며 진정성 있는 사죄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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