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양(汾陽)의 소영웅, 영화를 인민의 것으로 돌리다
펀양(汾陽)의 소영웅, 영화를 인민의 것으로 돌리다
  • 영대신문
  • 승인 2013.12.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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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느와르의 영웅이 되지 못한 청년 <소무>와 <네 멋대로 해라>의 접점에 관하여

지아장커가 처음으로 만든 장편 극영화는 잘 알려진 영화 <소무>(1997)이다. 조악한 화질로 재생되는 영상은 그 자체로 재기 넘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애잔하다. 소무(小武)라는 의미심장한 이름(무협에서 강호의 젊은 영웅을 뜻하는‘소협(小俠)’의 변형일까)을 지닌 소매치기 청년의 몽매하고 구질구질한 모습에는 다름 아닌 감독 자신의 청춘 시절이 투영되어있다. 청춘이란 우연과 숙명이 더해진 것이라 이야기하는 지아장커, 그는 반항아였던 자신의 십대 시절 정서를 자신의 첫 장편 영화 <소무>에서 반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다소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더 있다. 우선 그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소무>라는 영화를 보면 약간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 기시감에 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크게 두 가지인데, 우선 하나는 이탈리아의 전후 네오리얼리즘 영화와 그 양식을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마치 40년 후에 중국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되살아난 <네 멋대로 해라>(장 뤽 고다르, 1959)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소무>가 고다르의 영화를 지향한 표시가 명백히 날 정도라면 지아장커가 유럽의 모던시네마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음은 거의 부인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세한 영향관계에 대해서는 감독 본인이 여러 차례 밝혀둔 적이 있지만, 한편으로 그가 제 6세대 감독으로 분류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닐 지도 모른다.
물론 중국 영화의 예술성이 6세대에 와서야 그 진면목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하고 덩샤오핑(鄧小平)이 정권을 잡기 시작했던 70년대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한 제 4세대 영화는 단지 정치적 선전 도구로 사용되거나 혹은 진부한 멜로드라마 및 에이젠슈테인식의 몽타주 기법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이전 세대의 영화들과는 분명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조금 거친 비유겠지만, 중국 영화사를 세계 영화사에 빗댈 경우에 문화대혁명 종결 이전의 영화에서 그 이후 영화로의 이행은 곧 고전 리얼리즘 영화에서 모던시네마로의 이행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새로운 영화예술은 80년대에 이르자 천카이거()와 장이머우(張藝謀)가 대표하는 5세대 감독들에 의해 마침내 화려한 꽃을 피웠고, <황토지>의 로카르노 은표범상 수상은 이를 증명하는 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나서 비교적 근래에 등장한 6세대 감독들은 5세대 감독들보다 유럽 모던시네마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은 세대이다. 5세대 감독이 정치적 대변혁 시기를 지나온‘문혁 세대’라면, 6세대 감독은‘천안문 세대’이자 동시에 개혁개방이라는 경제적 과도기에 서 있었던‘개혁개방 세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 체제로의 전환과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한 중국의 새로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년기를 보낸 6세대 감독들에게 서구의 대중문화는 전혀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장이머우나 천카이거와 같은 중국 내 가장 뛰어난 영화 인재들을 배출한 북경전영학원의 체계적인 영화이론 커리큘럼 하에 세계 각국의 영화를 공부했던 제 6세대 감독들은 이전 세대의 감독들보다 더욱 유럽 영화에 친숙했기에 또 그만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아장커는 연출 전공이 아닌 이론 전공생이었고, 4년간의 대학 생활 동안에 세계의 영화를 두루 섭렵했다. 그는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을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았으며, 장 뤽 고다르를 자신에게 영향을 준 감독 중 한 명이라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지아장커가 학교를 갓 졸업하고 만들어낸 <소무>라는 영화가 네오리얼리즘과 누벨바그 영화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우선 지아장커의 <소무>가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이라든가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로베르토 로셀리니, 1945)가 대표하는 네오리얼리즘 영화와 가지는 접점을 설명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네오리얼리즘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이탈리아의 사회상을 주시하고자 했던 영화 운동인데, 기존 할리우드 고전 리얼리즘의 전통적 내러티브 관습에서 벗어난 양식상의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을 지향한다는 점인데, 이는 현실을 단순히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가령 거칠디 거친 화면의 입자들, 야외촬영방식과 자연광 활용, 비전문 배우 기용(<자전거 도둑>에서 주인공인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는 전문배우가 아닌 실제 철공소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잦은 헨드헬드와 롱테이크는 거의 모든 네오리얼리즘 영화가 공유하던 영화 기법이었다. 
<소무>를 네오리얼리즘 영화와 비교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거라, 사실 더 흥미로운 작업은 <소무>와 <네 멋대로 해라>를 비교하는 일일 지도 모른다. 물론 양식적인 면에서 따지고 보면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역시 여타 누벨바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네오리얼리즘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새로울 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 확실히 재미있는 것은, 두 영화가 필름느와르에 대한 변주와 전복을 꾀하고 있으며, 느와르 영웅을 추종하고 모방하는 소영웅적인 인물들이 단단히 실패하고 마는 서사를 취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네 멋대로 해라>와 <소무>가 가지는 시간적 간극을 고려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내용상의 여러 군데 디테일에 있어서도 <소무>는 <네 멋대로 해라>에 대한 오마주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와 <소무>가 필름느와르에 대한 변주와 전복을 시도하는 영화라고 했는데, 정확히 구분하자면 <네 멋대로 해라>는 할리우드 필름느와르에 대한 변주와 전복이며 <소무>는 홍콩느와르에 대한 변주와 전복이다. 누벨바그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적 전통을 비틀면서 기존 산업 시스템에 대항하는 영화였으며, 중국의 6세대 영화는 주류의 영화제작 시스템에서 벗어나 당의 검열을 받지 않고 2000년대 이전까지 자유로운 독립 창작 활동을 하던 신생 감독들의 영화(지하전영)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사실 6세대 영화들을 무어라 한 부류로 지칭하기에는 그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개중에 일부는 지나치게 상업화된 중국 영화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 의식의 일환으로 금기를 건드리며 과감한 실험성으로 무장한 영화들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아장커 영화의 경우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는 <소무>에서 자신의 청소년 시절 주류문화였던 홍콩느와르에 대한 전복을 꾀하는 재치 있는 방식을 통해 청년 감독 특유의 도전적 예술 정신을 보여주었는데, 문제는 이것이 홍콩느와르 자체에 대한 어떤 향수 때문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것을 비판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 있다. 오히려 이 방식은 할리우드의 필름 느와르의 정형화된 틀을 깨부수어 자기만의 스타일이 녹아든 영화를 만듦과 동시에 그 원형이 된 필름 느와르에 대한 경의를 함께 남아냈던 고다르와 너무나 유사한 방식이다.
부인하기 힘든 것은 지아장커가 오마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감독이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소무>는 물론이거니와, <임소요>(2002)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1994) 속 그 유명한 신과 우마 서먼의 전매특허 헤어스타일을 그대로 따왔으며, <스틸라이프>(2006)에서는 <영웅본색>(1986)의 주윤발을 따라하는 소년을 등장시켰고, 최근작 <천주정>(2013)에서는 <A Touch of Sin>이라는 영문제목이 보여주는 유사성만큼이나 호금전(胡金銓) 영화의 자취가 곳곳에 배어있다. 그러니까 단지 지아장커는 고다르 영화를 (다소 오마주의 차원에서) 중국적으로 재해석하기위해 중국식 느와르인 홍콩 느와르를 끌어다올 발상을 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누벨바그 감독들이 할리우드 필름느와르를 재료삼아 가지고 왔던 것을 생각했을 때 지아장커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유사한 대상은 홍콩느와르 말고 다른 것이 없다. 지아장커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계기가 잘 말해주듯이 그는 동시대의 급진적인 6세대 감독들, 이를테면 장위엔(張元) 같은 감독들이랑은 좀 다르다. 지아장커는 연출 전공생이 아니라 이론과 학생이었기에 영화 제작 여건이 충분치 못했고, 유럽 거장 감독(아마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일 것이다)이 쓴 독립영화 제작 매뉴얼을 보고 왕홍웨이와 유릭와이를 비롯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소규모 자본으로 <소무>를 찍기 시작했다. 애초에 주류 상업영화나 주선율 영화를 비판하기 위해서만 영화를 만들려 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거기에 급변하는 중국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부러 주류에 대한 저항심 때문에 누벨바그 영화를 모방하고 홍콩 느와르를 끌어다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누벨바그 영화에서 네오리얼리즘의 양식을 일부 따른 것은 그것이 상업영화의 전통적 관습을 배반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네 멋대로 해라>가 네오리얼리즘 양식의 일부, 또는 전체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은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네 멋대로 해라>의 중국 버전인 <소무>역시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이 군데군데 보이는, 분명히 네오리얼리즘 사조의 영향을 받은 영화다. 인공조명 대신 자연광을 사용하고, 세트 촬영 대신 로케이션 촬영을 한 점은 두 영화의 양식적 특징을 가장 잘 말해주는 요소 중에 하나이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두 장소ㅡ미셸과 패트리샤가 머무는 아파트, 그리고 소무와 메이메이가 묘한 감정을 나누는 방ㅡ는 모두 실제 건물 안에서 촬영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대형 카메라 대신 최소한의 장비만을 사용해야만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더욱 사실적인 느낌이 배가된다. 사실 <네 멋대로 해라>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의도성이 짙은 점프컷 남발과 무시된 180도 법칙이다. <소무>가 이런 세세한 기술적 부분조차 똑같이 닮아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아장커가 실험적 시도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소무>가 가장 충격을 주는 부분은 맨 마지막 신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소무의 시점 숏이다. 소무의 일상을 다소간의 거리를 둔 채 은밀하게 따라다니던 카메라의 시선이 불현듯 기둥에 묶여 쭈그려 앉아 있는 소무 자신의 시선으로 합치될 때, 관객은 급작스런 감정의 혼란을 고스란히 전달받게 된다. 고다르의 영화가 기술적 트릭을 사용해 소격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면 <소무>의 경우는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를 노린다. 
치밀하게 조직된 기존 상업영화의 플롯으로부터 한참을 벗어나려는 시도 역시 기존의 필름 느와르를 전형성을 전복하는 데 힘을 싣는 요소였다. 고전적인 할리우드 영화 속 영웅들의 모습과 달리 <네 멋대로 해라>의 영웅 역할인 미셸은 자신의 목적을 채 달성하기도 전에 모호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야기의 구성 자체가 다소 느슨하고 즉흥적인 느낌을 주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그가 벌이는 행위에 어떠한 설명을 붙이지 않고 단지 지리멸렬하게 쫓아다니기만 하다가 우발적으로 그의 죽음을 비춘다. 할리우드식의 필름느와르가 보여주는 전형적 서사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네 멋대로 해라>에서 그 기대를 절대 충족시킬 수가 없다. <네 멋대로 해라>식의 느와르 영웅 미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순간부터, 카타르시스는커녕 허무맹랑함과 치졸한 감정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소무>도 찬찬히 뜯어보면 홍콩 느와르 영화의 장르 컨벤션을 일부 따르는 척 하고 있는데, 가령 주인공은 총을 지니고 있지 않을 뿐이지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은 청년이며(물론 큰 암흑가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코흘리개들을 데리고 좀도둑질을 하는 수준이다) 친구에게 배신도 당하고 경찰의 위협에 노출되어있다. 그는 언제나 뒷골목을 거닐고 유흥 주점을 드나들며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 소매치기한 돈을 긁어모아 여자 친구에게 기꺼이 금반지를 해주려는 순정파 소무의 모습은 <첩혈쌍웅>(1989) 속 주윤발의 어설픈 버전 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가 길을 나설 때 귀에 익은 <첩혈쌍웅>의 음악이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소무의 최후는 주윤발 스타일의 비장한 죽음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맛보는 쓰디쓴 굴욕감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등장인물들의 유사성이다. 그러니까 이 두 영화가‘필름 느와르의 영웅이 되지 못한 청년들’을 다룬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건, 각각의 두 주인공이 느와르의 영웅 캐릭터를 모방하기만 할 뿐 진짜 영웅 행세는 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기 때문이다. 단지 모방의 대상이 되는 영웅이 할리우드식 필름느와르의 영웅인지 홍콩느와르의 영웅인지만 다를 뿐이다. 험프리 보가트와 자신을 동일시하느냐, 주윤발과 자신을 동일시하느냐, 단지 그 차이인 것이다. 미셸과 소무는 헛헛한 욕망을 품은 젊은이들인데, 심지어 둘 다 좀도둑이다. 단지 소무가 펀양(汾陽)이라는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변두리 계층의 엉큼한 젊은이라는 이유만으로 좀도둑이라는 직업을 설정했다손 치더라도, 미셸과 소무는 성격은 물론 하는 행동마저 닮았다. 그들은 정상적인 일을 하기보다 범죄를 도모하는데 바쁘고 양심의 가책도 그다지 안 느낀다. 하지만 뭇 느와르 영화 속의 영웅들과 달리 그들은 지극히 우유부단하고 때로는 순진하기까지 하다. 또한 그들에겐 각각 정체불명의 여자 친구가 있는데, 두 여자들 역시 전형적인 느와르 영화 속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역할인 팜므 파탈이라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어정쩡한 면모를 갖고 있다.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지만 반대로 남자를 곤경에 빠뜨리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이 어설픈 두 여성은 영화의 말미에 가서 각자의 남자를 홀연히 배신하고 떠나게 된다.
이 당돌하고도 한심한, 전통적 장르 영화의 기준과 관점에서 지극히 비전형적인 인물들은 느와르의 풍격을 도리어 망치는 역할을 한다. <네 멋대로 해라>와 <소무>는 그러니까 목표하는 지점에 정확히 가 닿은 셈이다. 고다르는 <네 멋대로 해라>를 가지고 이미 굳건해진 느와르의 공식을 짓궂게 배반하면서 그것이 산업이 만들어 낸 영화가 아닌 작가 개인의 고유한 영역에 속하길 원했고, 그 시도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중국 5세대 영화의 불씨가 다해갈 무렵, 40년 전에 나온 유럽 고전 <네 멋대로 해라>를 기발한 방식으로 불러내 그것의 중국화를 시도한 지아장커는 고다르가 영화사에서 그랬던 것만큼이나 중국 영화사에서의 높은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고, 새로운 세대의 핵이 되었다. 그렇지만 <소무>를 그저 패기 넘치는 한 젊은 감독의 참신한 영화적 시도 혹은 위대한 거장 감독에 바치는 오마주로만 읽기에는 어디엔가 미안한 구석이 있다. <소무>에는 영화 그 자체의 독창성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변화의 소용돌이 속의 중국 사회에서 낙오된 젊은이들의 짙은 무기력감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중국학부4·휴 이 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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