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모태, 인문학
우리 삶의 모태, 인문학
  • 안수영 준기자
  • 승인 2013.12.2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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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인간의 가치 탐구와 일상생활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류의 출현과 함께 발전돼 왔다. 인류가 출현한 후 먼저 가정이란 작은 사회가 구성되고 이러한 소집단이 모여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자를 개발하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온 과정을 인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산업의 발달로 인해 실용주의 학문이 강조되면서 인간의 삶과 밀접한 인문학은 자연스레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우리 삶에서 인문학의 필요성과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고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인문학의 중요성,‘문(文), 사(史), 철(哲)’

지난 8월 7일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우리나라가 성숙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근간은 바로 ‘인문정신문화’이다”라고 발표했다. 이만큼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대학 내부에서는 취업과 자격증, 학업 등으로 인해 인문학이 등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인문학의 중요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쇠퇴해가는 인문학을 살리기 위한 노력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국어국문학과 박승희 교수와 컴퓨터공학과 정재은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해오면서 공동체적인 삶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인간들이 살아왔던 경과 과정과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고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영역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에 대해 개념적으로 정의를 내리면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인문학은 문학과 사학(역사), 철학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중세시대는 종교를 중심으로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시대였고 근대에는 학문이 법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으로 분화됐다. 법학은‘법학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통제함으로써 운영해 나가는 학문을 뜻하며 사회과학은 사회구조나 사회현상, 사회변화를 다루는 학문이다. 반면에 인문학(문학, 사학, 철학)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통합의 의미로 하나의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문학은 인간의 정서적인 구조를 표현하고 역사학은 인간의 삶을 통틀어 살펴보는 학문이다. 그리고 감성적인 부분을 다루는 문학과 인간 삶의 구조를 살펴보는 역사학이 접목된 학문으로 인간의 삶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철학이 있다. 다른 학문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중심으로 이해, 분석, 재해석, 재구성한다면 인문학은 인간의 내면을 깊이 바라보고 인간의 욕망과 감정, 사상, 관점, 체계에 대해 깊이 관찰하는 학문이다.
이에 대해 박승희 교수(국어국문학과)는“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설렘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식체계를 인문학에서 확립시켜 줄 수 있다”며“현대인들은 물건이나 매체 중심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이러한 것들조차 사람을 배제하고는 성립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사람을 보지 못하면 결국 눈먼 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으로 물질 중심적인 현대인들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과거와 달라진 인문학의 사회적 분위기=인문학의 위기는 20년 전부터 있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당사자들의 인문학에 대한 편견으로 위기가 초래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추상적인 학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적인 분위기도 인문학의 위기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자본주의가 팽창해질수록 인문학이 갖는 본질과 충돌하게 돼 있다. 하지만 자본이 갖고 있는 물질적인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인문학이 보완하고 조절해 정화해줘야 한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또한 자기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우리 사회에 부족하고, 이런 것들이 사회적 병리 현상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이 갖는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인문학을 통해 새로운 사회의 생산력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사회를 운영하는 방법과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인문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취업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복수 전공하고 있거나 전과를 택하는 등 인문학은 사회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인문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묻고 싶다. 왜냐하면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미래를 설계하게 되면 연봉이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최근 대기업을 비롯해 조직이나 단체에서 요구하는 능력 중 하나가‘인문적 기획’이다. 예를 들면 기업에서 상품을 개발할 때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악해 구매력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인문학이 필수적이다.
◆대학이 앞장서서 인문학도를 양성해야=먼저 대학을 운영하고 있거나 대학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사람들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와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현재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학과 통폐합은 효율적으로 학과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질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문학을 붕괴시킬 수 있다.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인문학이 학문 폐쇄성을 극복하려면 다양한 분야와 접목되면서 재구성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재은 교수(컴퓨터공학과)는“인문학과 기술이 융합돼 나아갈 수 있는 접목점을 찾기 위해서는 학과 간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며“학문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복수전공과 부전공을 활성화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문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다른 학과생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인문학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최하람 씨(의학1)는“의사의 자질로서 인격을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인문학 강연을 들으러 다닌다. 강연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의사는 인간을 치료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회적 역량을 갖춘 인격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또한 이주은 씨(의류패션2)는“의상을 디자인할 때 인간의 신체를 포함해 사고와 행동양식을 파악해야 하므로 인문학을 배우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이처럼 인문학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타 학과에서도 인문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컴퓨터와 접목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Human Computer Interaction)에서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컴퓨터 언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데 인문학이 필요하다.
미술 분야에서는 컴퓨터 IT와 인문학을 접목해 미디어아트, 디지털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융·복합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우리 사회가 기술만 중시하다 보니까 학생들이 인문학을 공부해서 도움이 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며“교수나 학교에서 인문학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가르쳐야 하고 학생들이 인문학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비판 정신’과‘자유’의 인문학
‘돈도, 기계도 아니다…결국은 사람이다’

인문학이 처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인문학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목요철학원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인문학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계명대학교 목요철학원 기획위원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이재성 교수(철학과)를 만나 인문학 특강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인문학이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살펴봤다.
◆목요철학원 33년간의 역사=계명 목요철학원은 1981년도부터 2010년까지 약 30년 동안 계명대학교 철학과의 학부생과 교수로 구성된 목요철학세미나 형태로 인문학 강연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1980년대 대학의 성격이 폐쇄적인 것에서 사회 개방적으로 변화하면서 2011년부터 철학도 학과의 틀에서 벗어나 학생은 물론 대구 시민과의 호흡을 유지해가는 방식으로 철학의 대중화를 실현해 나가기 시작했다.
계명 목요철학원은‘지역사회를 위해 대학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하고 고민하던 중 인문학 강연을 통해 지역의 문화 활동을 촉진해 교육의 도시 대구로 부흥시키기로 결정했다. 즉, 학부생들로 구성돼 있던 폐쇄적인‘세미나’형식에서 개방적인‘포럼’형식으로 바꿔 대구 시민이라면 누구나 인문학 강연에 참여해 철학에 대해 알아갈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를 살렸다.
◆인문학을 배웠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인문학을 배웠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비판 정신’과‘자유’다. 현재 대학이 상품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자유가 사라진다는 것은 비판 정신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문학은 대학이 갖고 있는 비판정신과 자유를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 교수는“대학을 시장에 종속된 조직으로 보는 것은 지식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화된 부속품을 생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학이 시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사회에 대한 비판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판은 어떠한 현상에 대해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대학은 비판 정신을 소유한 지식인을 양성하는 곳이지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다.
현대 사회는 특정 영역으로만 이뤄져 있지 않으며 매우 복잡한 영역들로 결합돼 있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춘 지식인을 양성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현재 실용주의 학문은 현상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배제돼있다. 하지만 인문학은 인간을 들여다보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로서 인간의 지속적인 삶의 과정들을 나타내고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담고 있다. 또한 인류의 문화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승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파코 에르고숨’의 방향으로 나아가야=지금까지 인류가‘생존’을 위해 달려왔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파코 에르고숨(Paco ergo sum, 나는 평화하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뜻)’이다. 평화에는 항상 갈등이 존재하는데 갈등이 있어야 인간의 삶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학은 이러한 갈등 속에서 긴장을 조정하고 중재를 통해 평화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안수영 준기자 terawkd@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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