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지성인의 탄생
매력적인 지성인의 탄생
  • 사학과 장문석 교수
  • 승인 2013.03.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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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의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카를로 치폴라가 전해주는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이 있다. 프랑스 혁명기에 처형을 앞두고 단두대 계단을 오르던 한 귀족이 발을 헛디뎌 비틀거렸다. 그러자 간수를 돌아보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비틀거리면 불길하다던데.”처형대에 오르는 것 이상으로 불길한 일이 또 있을까? 치폴라 교수는 이 일화를 전하며 그런 유머 감각을 지닌 귀족의 목숨은 살려둘 가치가 있다고 짐짓 능청을 떤다. 처형 직전에 유머를 구사한 귀족도 놀랍지만, 그런 유머 감각을 근거로 관용을 요청한 역사가의 유머 감각도 범상치는 않다.
무릇 유머는 지성의 최고봉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머란 자신과 타인을 학대하여 억지로 짜내는 웃음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계몽시키는 촌철살인의 비판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유머는 오직 깊고 풍부한 지식의 우물에서 길고 질긴 사색의 동아줄로 길어 올린 지성의 맑은 물이라고 할 수 있다. 치폴라 교수가 누구인가? 학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급의 경제사학자가 아니던가? 또 경제사학이란 무엇인가? 수많은 사료들과 이론들과 통계 수치들과 씨름해야 하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지루하기 십상인 학문이 아니던가? 치폴라 교수의 관대한 유머는 필경 그런 학문과의 치열한 사투에서 나온 예리한 지성의 번뜩임이다.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상대의 유머 감각을 중히 여긴다는 보고가 많다. 유머 감각이 지성의 징표임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배우자감의 매력도를 급상승시키는 지성은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다. 지성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천재도 노력하지 않으면 범인으로 남기 마련이다. 노력 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그대여,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치폴라 교수를 잘 알았을 또 다른 경제사학자의 다음과 같은 충고를 명심하라. “아무것도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없다. 로맨스조차도.”이와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지성을 꿈꾼다면, 조각가가 망치와 끌로 땀 흘려 대리석 깎는 법을 익히듯이 부단히 우리의 지성을 조각해야 한다.
그러면 매력적인 지성을 연마하는 도구는 무엇인가? 누구나 갖춰야 할 도구가 하나 있으니, 독서가 바로 그것이다. 독서는 우리 외부의 지식을 우리 내부에 집어넣는 접속 수단이다. 지식이 투입되지 않는다면 지성도 산출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 용량은 크지 않다. 지식을 계속 투입해도 두뇌에서는 계속 증발한다. 그래도 계속 읽어야 한다. 틈나는 대로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리고 되도록 많이 기억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일찍이 르네상스의 영웅 미켈란젤로는 그림은“손이 아니라 머리로”그린다고 했는데, 책은 단지 눈이 아니라 손과 머리로 읽어야 한다. 수고스럽더라도 손으로 표시하고 머리로 암기하며 읽어야 한다. 그 외에도 방법은 많을 텐데, 문명의 이기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독서는 지식의 피동적인 수용이 아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책은 그저 종이가 아니라 일종의 행위자로서“경험-책”이라고 했다. 책을 읽는 것은 먹고 일하고 사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앎의 경험이며, 그런 앎에서 삶이 바뀐다는 말이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행한다는 것이요,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냥 아는 게 아니라‘잘’아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독서는 반드시 사색으로 되새김질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오늘날 정말로 필요한 것은 검색이 아니라 사색이다. 사색이 무슨 거창한 말은 아니다. 일찍이 과학 혁명의 영웅 뉴턴은 사색을“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으로 정의했는데, 가령 우리가 과제물을 준비할 때 어떻게 쓸까 요모조모 궁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색이다.
새 학기의 부푼 기대와 각오로 온 캠퍼스가 북적인다. 그러나 들뜬 마음을 잠시 가라앉힌 다음, 손에 책 한 권을 쥐고 우리 캠퍼스의‘사색의 길’을 걸어보자. 장인의 마음가짐으로 독서와 사색이라는 망치와 끌로 스스로를 조각해보자. 그래서 매력적인 지성인으로 탄생한 영대인들의 유머가 지치고 무료한 세상을 한바탕 웃기지 못하란 법이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학기 초보다 더 유쾌한 학기말을, 입학식보다 더 풍성한 졸업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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