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상인의 상도(商道), 그 길을 따라서
오사카 상인의 상도(商道), 그 길을 따라서
  • 신동엽기자, 이형선 기자
  • 승인 2013.03.10 1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왜 ‘오사카의 상도’인가?
오사카의 상도는 ‘손님에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정신’이다. 그 정신의 핵심은 ‘돈을 남기는 것은 하(下), 가게를 남기는 것은 중(中), 사람을 남기는 것은 상(上)’이다.
돈 보다는 사람을 남기라는 격언이 가슴에 와 닿아 지난 1월 13일부터 19일까지 학부교육선진화 사업으로 전공탐색 일본 오사카 탐방을 참가했다.
◆오사카 상도의 시작=오사카 상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손에서 시작됐다. 그는 당시 천황이 있던 교토의 경제력을 오사카로 끌어 모으기 위해 일본 전역의 상인들을 불러들였다. 상인을 우대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약 5천억 엔(약 7조 원)에 달하는 황금을 쌓아 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포상을 줬다. 반면,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가차 없이 죽였다. 일을 잘한 신하들에게 준 하루 동안 황금의 양은 요즘 화폐로 환산하면 약 60억 엔(약 8천4백억 원)이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권세를 천하에 자랑하기 위해 오사카 성을 축조하기도 했다. 오사카 성 관계자 야마시타겡키(山下元氣) 씨는 “오사카 성 성곽 도시로서의 번영이 근?현대의 오사카 상인의 거리를 발전시키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오사카 성의 본궁인 천수각은 한 마리의 백조의 형상처럼 아름다웠다. 천수각 내부는 5층 규모의 현대식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일본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천수각 내부를 돌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내에서는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그를 싸움꾼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능하고 특히 ‘편지’를 써 주는 취미를 가진 매력있는 분이셨다.        
◆『일본의 상도』저자가 말하는 오사카 상도란?= 일본탐방을 떠나기 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생각나 일본 여행 가이드 집부터 일본어 회화 핸드북까지 도움될 만한 서적들을 섭렵했다. 하지만 좀 더 생생한 정보를 얻고 싶어 탐방 계획서를 쓰면서 참고했던『일본의 상도』저자인 홍하상 작가님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홍 작가님은 20여 년간 일본을 100여 회 이상 오가며『일본의 상도』,『오사카 상인들』,『신용-긴자 상인』등 다수의 ‘일본 상인 시리즈’를 쓰신 분이다. 홍 작가님과의 대화중에 오사카에 있는 장인 가게들의 위치와 정보에 술술 말하셨는데 ‘몇 십 년간의 경험’이 대화 속에 묻어나는 것 같았다.
『일본의 상도』마지막 부분에 5대 상인들의 상도 계명을 모아놓은 자료가 있었는데 이 상도 계명은 마치 오늘 날 사업이나 창업 지침서처럼 보였다. 그리고 “해보지도 않고 인생을 끝내지 마라”고 쓴 문구는 가슴 속에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01.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과 교제하지 않는다. 돈만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번영하지 못한다.
02. 이익에만 혈안이 되면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외형상의 규모만 확장하게 된다. 이것은 위험하다.
03. 모든 거래는 현금으로 한다.
04. 재력 이상의 역할을 하는 인격과 신용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05. 번 돈을 유용하게 사용하면 그에 비례해서 돈이 굴러들어 온다.
06. 장사 밑천과 생활비는 엄격하게 구분한다.
07. 이익 분배를 분명하게 한다.
08. 이익이 생기면 상업자본과 별도로 분리해서 적립한다.
09. 간부의 태도나 언행에 따라 점원은 교육된다.
10. 동업자의 나쁜 습성에 물들지 않는다.
11. 자기 가족을 사랑한다.
12. 우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13. 자기 힘만 믿지 말고 겸손하게 손님을 맞아라.
14. 지불 일에 지불하지 말고 지불일보다 먼저 지불하도록 노력한다.
15. 외상은 상인에게 필요하지만 외상의 양과 이익의 양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16. 구매자가 좋아하는 판매자가 되어야 한다.
17. 장사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18. 먹고 입어야 예절도 안다는 말은 거짓이다. 예절을 아는 사람이 스스로 먹고 입을 수 있다. 장사는 그만큼 예절이 중요하다.
『일본의 상도』中 <오사카 상도 18계명>
 
탑2: 궁금하면 미나미로(路)
 미나미 오사카(南大阪(みなみおおさか))는 다른 지역에 비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점포가 많다. 미나미 오사카에 속한 도톤보리(道頓堀(どうとんぼり))와 아메리카무라(アメリカ村 (アメリカむら)) 거리를 걸으며 오사카 상인들만의 상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문화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도톤보리에서는 현란한 이색 간판들과 요리하는 냄새에 코가 놀라고, 아메리카무라 거리에서는 우리 또래 젊은이들의 개성있는 패션에 눈이 놀랐다.
◆오사카의 중심, 도톤보리에 서다= 특히 네온사인이 빛나는 미나미의 중심 지역인 도톤보리는 ‘쿠이다오레(食い倒れ(くいだおれ))’거리. 즉, 사치스럽게 먹고 마시다가 재산을 탕진하는 거리라고 불릴 만큼 음식점들이 많다. 거리 곳곳마다 타코야끼, 라멘, 대게 등 일본의 전통 거리 음식점부터 퓨전 음식점까지 각양각색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음식을 팔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먼저 세계 최초로 라면을 개발한 닛식(日淸) 식품이 오사카에서 출발한 기업이고 우리나라 라면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 도톤보리의 ‘금룡라멘(金龍ラ?メン)’을 찾았다. 금룡라멘은 오사카 3대 라멘(금룡, 시텐노(四天王), 카마쿠라(鎌倉)) 중 하나로 백 여 년의 전통을 가진 라멘 가게다. 우리들은 일본식 라멘의 맛이 너무 궁금했다. ‘한국에서 먹어봤던 나가사키 짬뽕과 비슷한 맛일까?’고 생각하며 식탁에 앉아 빨리 점원이 주문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점원은 오지 않았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왜 점원이 주문받으러 오지 않는 거지?’
그 때 점원이 오더니 우리들을 셀프 식권 판매기 앞으로 데려다 줘 무사히 라멘을 시킬 수 있었다.
셀프 식권 판매기라… 우리 대학교 학생식당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기계인데 오랜 전통을 지닌 일본 라멘 집에서 셀프 식권 판매기로 음식을 직접 주문 한다는 것 자체가 의아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인기를 유지해 오고 있는 것 자체도 대단히 느껴졌다. 일본 라멘의 맛은 돼지고기로 육수의 맛을 내서 우리나라 전통 음식인 국밥에다가 밥을 빼고 면을 삶아 넣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위에 일본 특유의 양념으로 조리된 부추무침과 기무치(キムチ), 돼지고기 덩어리로 양념을 하여 구운 차슈(鎌倉)를 얹은 것이 금룡라멘의 특징이었다. 라멘을 다 먹고 “가게를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금룡라멘 가게 주인 쿠보타(久休田) 씨는 “몇 대 째 내려오는 변하지 않는 맛”이라고 짧게 답했다. 금룡라멘을 자주 찾는다는 하야시(はやし) 씨는 “라멘 국물이 담백해서 맛있고, 무엇보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고 밝혔다.
도톤보리는 마치 3D 영화처럼 입체적인 간판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간판 크기와 모양에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구리코(グリコ) 제과점’의 ‘달리는 마라토너’ 간판은 1935년에 설치된 이래로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 이미 도톤보리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간판의 유래는 구리코 제과점에서 생산된 과자를 먹으면 언제든지 잘 달릴 수 있다고 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러한 간판 하나하나에도 물건을 잘 팔기 위한 ‘상도’를 가미한 상점들이 많아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젊음의 거리, 아메리카무라에 가다=도톤보리에서 금룡라멘으로 배를 채웠다면 이제는 젊음의 거리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도톤보리와 인접한 아메리카무라 거리는 197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직수입한 옷이나 잡화를 취급하는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발전해온 곳이다. 3천여 개의 의류 상점이 빽빽하게 들어선 거리는 개성적인 차림의 젊은이들로 가득하며 주말에는 각종 퍼포먼스와 프리마켓도 열린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골동품들을 모아놓은 허름한 거리에 불과했지만 미제 용품 가게들이 들어서면서부터 젊음의 거리로 거듭났다. 대구 동성로 로데오 거리와 비슷했다. 마침 우리들이 방문한 시기가 일본에서는 성년의 날(成人の日)이었다. 그래서 20세가 되는 많은 일본 여성과 남성들이 각각 기모노(きもの)와 정장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성년의 날을 맞아 놀러온 휴우가사치호 (日向幸?) 씨는 “아메리카무라 거리는 젊음의 거리답게 옷 상점들이 많고 번화한 곳들이 많아 자주 오는 편이다”고 했다.
아메리카무라 거리의 대표 상점인 톰스 하우스(Tom's house) 내 가게 주인 아후로 씨(あふろ)에게 판매 비결을 물어보니 “15년 전부터 가게를 운영해 왔는데 손님이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손님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비결인 것 같다”고 답했다.
아메리카무라는 젊은 일본인들이 붐벼 인터뷰할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본어 회화 실력이 왕초보라 사실 일본인과 능숙한 대화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케이팝(K-POP) 한류였다. 인터뷰 시작 전에 간단히 영대신문을 소개하고 다짜고짜 “빅뱅”이라고 외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인들도 많이 당황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눈치 챘는지 “ビッグバン(빗구방)?”이라고 되물었다. 빗구방이 빅뱅의 일본어 발음인 줄 모르고 한참을 실랑이 하며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회전 초밥 집에 갔는데 한 일본인이 빅뱅 팬임을 증명하는 ‘’로고가 새겨진 셔츠를 입고 있어 또 한 번 한류를 실감했다.     
  
사이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USJ)에 숨겨진 상도의 진실
유니버셜 스튜디오란 다양한 영화 속 캐릭터와 장면들을 재현한 곳으로 놀이기구와 각종 쇼를 보여주는 장소(어트랙션)를 제공하는 일종의 테마파크다. 일본 오사카의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Universal Studio Japan, USJ)이 개장한지 12년이 됐지만 그 명성은 여전하다. USJ는 일본의 침체된 테마파크 사업을 끌어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USJ 역에서 운행되는 지하철 겉면도 캐릭터로 디자인돼 있어 세심한 부분까지 고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일본 탐방 계획을 짤 때 USJ를 넣을지 말지 참 고민이 많았다.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 테마로 만든 USJ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놀이공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전 조사와 몇 년 전에 USJ를 다녀온 한 친구의 강력 추천으로 우리는 6박 7일 중 하루를 USJ에 바쳤다.
‘USJ는 일본의 상도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생각은 숙소에서 지하철을 타고 USJ의 랜드마크인 ‘유니버셜’(UNIVERSAL)이 새겨진 지구본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까지 머리 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첫 놀이기구였던 죠스(JAWS)를 타고나서부터 USJ 어트랙션은 ‘탄다’라기 보다는 ‘경험한다’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어트랙션이 캐릭터 기념품 전시관으로 바로 이어져 있어 애니메이션을 잘 활용한 ‘상도’라는 느낌을 받았다.
USJ는 우리들을 잠시라도 놔 주지 않았다. 뉴욕의 빌딩 사이를 누비며 고층에서 떨어지는 아슬아슬함을 만끽하고 건물과 건물을 넘나들며 스파이더맨이 된 기분에 흠뻑 젖어 얼굴이 얼얼해질 정도였다. 어트랙션 하나하나를 탈 때마다 다음 어트랙션이 기대됐다. 여기서 우리는 USJ에 숨겨진 상도의 진실을 알아챘다. USJ는 차세대 놀이기구로 아주 제격이다. 보기에도 아찔한 어느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들처럼 불안하지가 않다. 또한 요즘 놀이동산의 잦은 사고처럼 크게 위험하지도 않으며 어지럽지도 않다. 단지 모든 어트랙션에 ‘이야기’를 넣어 그 ‘이야기’를 다 읽으면 클라이맥스 순간에 사진 촬영이 돼 좋은 추억을 남길 수도 있었다. 그 사진 속 우리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며 배를 쥐면서 웃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성인인 우리들이 USJ에서의 보낸 하루는 혼이 쏙 빠지도록 정말 신나고 재밌었다. 그리고 어느 덧, 우리들은 또 다른 어트랙션을 ‘경험’하기 위해 뛰고 있었다.
7일 간의 ‘오사카의 상도’ 여정을 모두 마치고 무사히 귀국했다. 탐방을 하면서 일본의 상도는 일본인 모두에게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일본인 특유의 친절과 배려심이다. 길을 물었을 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노부부, 인터뷰에 성심성의껏 응해준 커플들을 보며 친절한 로봇들이 국가 마케팅을 하는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인 특유의 ‘친절한 상도’를 느끼러 또 가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