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다오
살아 있어다오
  • 김효은 대학부장
  • 승인 2012.11.2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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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숙명 중 하나는‘사는(生)’동시에‘죽는 것(死)’을 떠안고 사는데 있다. 그렇다면‘사는 것’은 무엇이고‘죽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이 근원적인 고민을‘신문사’에 적용해 봤다.
살아있다는 것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에 혈액이 흘러 몸이 따뜻해지는 것인데 죽는 것은 이 반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죽는다는 것의 신체적 변화는 무엇인가? 죽음은 온몸이 딱딱하게 굳고, 차갑게 된 상태다.
이 말은‘언론’그리고‘영대신문’이 만약‘딱딱함’을 고수하고 지나치게 차가움의 상태에 있다면 그것은 곧‘죽음’의 현상을 목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데 있다. 여기서 말하는‘딱딱함’은‘문체’의 딱딱함이 아닌 내용과 접근방식의 딱딱함을 의미한다.‘차가움’은 차갑고 냉철한 이성을 의미하는 바가 아닌 조직 내의 피가 순환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를 뜻한다. 즉 이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없는 정체된 상태로 차가운 형체만 남는 것이다.
언론이 딱딱하고 차가운 상태로 있다는 것은 곧 그 자체가 정지된 상태로서 죽음의 상태로 해석해야 한다. 영대신문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혈액의 순환을 멈춘다면, 몸이 굳어버린 상태인‘죽음’의 상태가 될 것이다. 이러한‘죽음’의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선 살아있음을 끊임없이 느껴야 한다. 살아있음이란 그 육체 내의 모든 혈액이 순환되고 있음으로 인해 따뜻함을 가진 상태를 의미한다.
영대신문의 역할은 모든 혈액이 잘 순환할 수 있도록 그 중추 역활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한 순환 활동을 하면서 지쳐서도, 멈춰서도 안 된다. 영대신문이 멈춘다는 것은 곧‘죽음’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허나 영대신문 기자들은‘영남대학교’라는 심장에서의 펌프질이 모두의 손끝, 발끝 곳곳에 혈액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즉 이를 제 1원칙으로 삼으며, 분명‘살아 있어야’할 것이다.   
필자는 이제 지난 3년간 활동했던 영대신문을 떠난다. 그리고 후배들에게‘살아있어 달라’는 짧은 말 한마디만 남기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살아있어 달라’는 선배의 말에 담긴 이면의 의미를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기에······이만 마지막 삼각사각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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