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레이야기 길에서 문학의 향기를 맡다
실레이야기 길에서 문학의 향기를 맡다
  • 김명아 준기자, 신동엽 준기자, 이경림 준기자
  • 승인 2012.11.2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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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문화부 문학기행을 통해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만 봤던 김유정 작가의 소설 속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바로 세 명의 문화부 기자들이 김유정 작가의 주된 작품 배경이 됐던‘실레 이야기 길’을 찾아 떠났던 것이다!

◆대구에서 춘천까지=11월 11일 오전 7시. 김유정 작가의 고향인 춘천을 가기 위해 동대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에 탑승했다. 전날 문학기행을 위해 김유정 소설집을 읽느라 잠을 설친 기자들은 버스 안에서 새우잠을 청했다. 깨어나 보니 어느새 춘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황급히 버스에서 내려 김유정의 작품 32편 중 12편의 작품 배경이 된 강원도 춘천‘실레이야기 길’에 가기 위해 남춘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김유정 역’에 내렸다.‘김유정 역’은 남춘천역에서 한 정거장이라 빨리 도착했다.
◆닭갈비와 막국수의 만남=우리나라‘역’이름 중에 유일하게 인명을 사용한‘김유정 역’은 기와집 형태로 전통적인 향수를 물씬 풍겼다.‘김유정 역’에서 표지판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니‘김유정 문학촌’이 보였다. 문학촌 주변에는 춘천 대표 음식인 막국수와 닭갈비를 파는 식당이 즐비했다. 전상국 촌장(72, 소설『우상의 눈물』저자)을 뵙기 전에 우선 춘천의 대표 음식을 먹어보기 위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막국수를 처음 먹어보는 기자들은 면이 담긴 그릇에 육수를 먹고 싶은 만큼  부었다. 육수를 얼마나 넣어야 할 지 몰라서 듬뿍 넣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육수를 많이 넣으면 안된다며 육수와 설탕 양을 조절해 주시기도 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 소리와 매콤한 막국수의 맛은 지금 떠올려도 군침이 돌 정도이다. 그렇게 기자들은 실레이야기 길을 걷기 전, 든든하게 배부터 채웠다.
◆실레이야기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나그네’=전상국 촌장은 기자들이 대구에서 올라오느라 수고했다면서 더 챙겨주려 했고 나중에는 실레이야기 길 입구까지 직접 데려다 줬다. 가는 길에 전 촌장은 실레마을에 대한 유래를 설명해줬는데“실레는 원래 시루의 강원도 사투리로, 김유정이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마을이 마치 시루처럼 생겼다 하여 실레마을로 불려졌다”고 말씀하셨 다.
올라가는 길에 우연히 옆으로 지나가는 한 아저씨와 인사를 나눴다. 얼굴이 젊어 보여 처음에는“아저씨”라고 불렀는데 알고 보니“예순셋 할아버지”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성함을 여러 번 여쭤 봤지만 쑥스러우신지 끝까지 대답하지 않으셨고 결국‘김유정 친구 나그네’라고 밝혔다.‘나그네’할아버지는 김유정의 가슴 아픈 짝사랑 박녹주와 박봉자, 어린나이에 비극적으로 부모님을 여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김유정에 대한‘나그네’할아버지의 마음 씀씀이에서 진심으로 김유정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들은‘나그네’할아버지께서 들려주는 좋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새기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들병이, 살기 위해 몸을 팔다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두포전』의 배경]
들병이란 병에다 술을 가지고 다니면서 몸을 파는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김유정 소설에서도 들병이인 여성이 남편과 함께 마을에서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 때 농촌에 사는 많은 여성들 중에는 종종 살기 위해 들병이 생활을 전전했다고 전해진다. 김유정 소설『아내』를 읽고‘눈웃음 길’을 찾았을 때 남편과 아내가 '들병이 장수'에 대한 의견대립으로 서로를 헐뜯던 부부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동백꽃’은 하얀 꽃? 노란 꽃?
[점순이가‘나’를 꼬시던 동백숲길-『동백꽃』의 배경]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버렸다’
이는 김유정 소설의 대표작인‘동백꽃’에 나오는 소년과 점순이가 스킨십을 하는 구절이다. 여기에 동백꽃 향기가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소설 속에 묘사돼 있는데“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노란 꽃이 피는 동백나무로 부른다”고 나그네 할아버지께서 설명해줬다. 우리가 갔을 때는 꽃이 모두 떨어져 아쉬웠지만 다음에 방문하면 흐드러지게 핀 노란 동백꽃 장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복만이가 달린다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가을』의 배경]
김유정 소설『가을』에는 복만이가 돈 때문에 아내를 팔고 줄행랑을 치던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고갯길’은 다른 길보다 경사가 비교적 높았다. 복만이가 자신의 큰집인‘덕냉이’로 도망치던 당시 상황을 상상하며 한 기자가 그 당시 복만이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쫓기듯 맨 발로 뛰어다니는 시늉을 했는데 나머지 기자들과‘나그네’할아버지 모두 기자의 연기에 진정성이 느껴졌는지 고갯길에서 한바탕 폭소했다.

◆도라지 캐먹던 시절을 담은 길
[춘호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소낙비』의 배경]  
고갯길을 넘어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빛이 도는 길이 나온다. 길의 왼편이 가파른 낭떠러지처럼 보여서 그런지 이 길은 고갯길보다 더 좁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 길의 표지판에는‘춘호 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이라고 소개 돼 있다. 노름 자금으로 2원만 구해달라며 매질을 하는 춘호를 피해 춘호 처가 진땀을 흘려가며 숲 속에 도라지 순을 찾고 있던 모습을 그린 곳이다. 소설『소낙비』는 도라지를 캐먹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당시 시골 서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떨어진 낙엽과 솔잎들이 엉켜, 주변이 황폐해 보이는 이 길이 춘호 처가 느꼈던 벼랑 끝에 서있는 삶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만무방’들이 남긴 흔적
[응칠이가 송이 따먹던‘송림 길’-『만무방』의 배경]
또 한참 길을 걷다보니 기다리던 표지판이 보인다. 주변에 울창한 나무들이 서 있는 이 길은 김유정의 대표 소설 중의 하나로 소설『만무방』의 배경이 된 곳이다. 만무방의 뜻은‘염치가 없이 막된 사람’이란 뜻이다.‘송림 길’은 소설 속 만무방으로 나오는 응칠이가 일은 하지 않고 재배한 송이를 먹으며 기분 좋아하고 닭을 잡아 생으로 뜯어 먹었던 곳이다. 응칠이가 송이를 따 먹던 길이라고 하기에 주변에 송이를 따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하여 둘러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길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와 풀잎들을 보아하니 송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하지만 풀잎이 많고 우거진 나무들 덕분에 응칠이가 숨어서 닭을 훔쳐 먹기에는 적합한 장소처럼 보였다.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잎을 들면 나오는 송이나 무덤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닭을 직접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응칠이가 걸었던 그 길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소설을 더욱 생생한 이야기로 만들어줬다.
 ◆이쁜이의 발그레한 볼을 닮은 단풍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산골』의 배경]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금병산(金屛山)에는 알록달록한 단풍잎이 기대했던 것만큼 많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송림 길’을 지나면 노란색, 빨간색 단풍들을 볼 수 있다. 잎이 거의 떨어진 나무들 사이에 있는 단풍나무들이 반갑게 느껴졌다. 때늦은 단풍 구경에 빠진 기자들은 옆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단풍나무 옆에 흐르는 계곡이 이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이렇게 단풍과 계곡이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이 길은 소설『산골』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쁜이를 좋아하는 석숭이가“너 데련님하구 그랬대지”하며 이쁜이를 놀렸던 곳이기도 하다. 빨간 단풍잎들이 이쁜이의 발그레한 볼을 상기시켰다. 이렇게 예쁜 사랑을 그리는데 단풍이 한 몫을 차지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농촌계몽을 위한 열정의 야학
[금병의숙 느티나무길]
1930년 김유정은 짝사랑 하던 박녹주에게 외면을 받고 22세가 되던 해 고향인 춘천 실레에 내려와 방랑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김유정은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금병의숙(錦屛義塾)’이라는 간이 학교를 지어 야학을 했다. 지금 금병의숙의 터에는 김유정의 뜻을 기리는 비석 하나와 느티나무 한그루가 야학 터를 지키고 있다. 여전히 야학 터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는 김유정이 그 시절 열정으로 했던 야학을 다 알고 있는 듯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 같았다.

◆쓸쓸히 남아있는 점순이네 집터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봄 봄』의 배경]
이 장소는 김유정의 소설『봄 봄』에서 1935년 무렵의 농촌사회를 배경으로 머슴으로 일하는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갈등이 매우 익살적이고 희극적으로 표현된 장소이다. 점순이네 집터를 보자 책을 읽으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생동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장인의 바짓가랑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매달리는‘나’와 고통스럽게 인상을 찡그리는 장인, 장인이 악을 내며 부르는 소리에 단숨에 뛰어나와‘나’의 귀를 뒤로 잡아당기는 점순이의 환상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치 이곳에 존재했던 점순이네 집터는 허구였던 것처럼 그 자리에 자란 무성한 잡초가 세월의 흔적을 보여줬다.

김유정의 생가와 문학촌
김유정은 7살 때 어머니를 잃고 8살 때는 아버지마저 잃어 모성애결핍된 인물로 유명하다. 그래서 자신의 어머니를 닮은 4살 연상의 박녹주에게 반해 그녀를 쫓아다녔지만 박녹주는 그 당시 인기 있는 기생이었기 때문에 김유정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박녹주를 따라다니느라고 연희 전문학교에서 낮은 출석점수로 재적을 당했다. 이후, 고향에 내려와 실레마을에서 거처했다.
생가는‘ㅁ’자 형태로 모든 방문을 열면 방이 이어져 있다. 생가 대문간을 들어오면 바로 왼쪽에 아궁이가 있는데 이 아궁이에 불을 때면 사랑방 구들을 데우고 봉당의 굴뚝으로 연기가 나 방충기능을 하고 미적 감각도 살릴 수 있었다.
김유정 문학촌은 그가 살아생전에 직접보고 겪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썼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하지만‘그의 작품들보다 유품이나 연애편지 같은 것이 전시돼 있었더라면 김유정을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는 4년이라는 짧은 창작기간 동안 무려 30여 편의 소설과 10여 편의 수필을 발표하는 천재성을 발휘했으며 많은 작품들이 해학적이고 독특한 구성으로 짜여 있다.
그의 해학적 표현은 비참한 일제강점기라는 현실 속에서 분노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그 고통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염원이 함축돼 나타난 것이다. 또한 여러 인물들이 보여주는 우스꽝스런 행위 역시 겉으로는 비록 우둔하고 비속하게 보일지라도 고통스럽고 가혹한 주위환경에 무기력하게 굴복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하층민들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문학 작품에 드러난 가장 큰 특징은 주된 배경이 가난한 산골 농촌이라는 점이다. 또한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서민들의 이야기라서 사투리가 많이 사용됐다. 어쩌면 김유정 작품에 나오는 구수한 표현들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느껴져 교과서에서도 자주 만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김유정의 해바라기같은 사랑 이야기
김유정 문학촌에서 만난 전상국 촌장은 기자들에게 김유정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줬다. 촌장은“당시 김유정이 어머니를 닮은 여인들에게 사랑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아픔을 그 여인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다음의 내용은 기자들이 김유정이 사랑하는 두 여인에게 편지를 보낸 상황을 재연하는 것이다. 또한 김유정의 사랑을 받던 여인들이 느꼈던 김유정의 절실한 마음에 대해서도 구상해봤다.
(1930년 11월 11일) 연모하는 녹주여!
너에게 항상 남자가 있다는 점은 나에게 가혹스러운 고통이다. 네 곁엔 항상 남자들이 많지만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너를 생각하며 내 열정을 바쳐 글을 쓰고 산에 올라 너를 외쳐본다. 내일 네가 최 씨 댁에 가야금을 뜯으러 갈 때 그 앞으로 내가 찾아가리다.
-유정-    
김유정에 대한 박녹주의 일기 中에서
어느 날 집으로 한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아무리 내가 판소리 명창이고 많은 남자들이 사모하는 여인이라 할지라도 학생에게 애절한 고백편지를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사실 나는 모든 남자들의 사랑을 받는 몸이지만 진실된 사랑, 애절한 사랑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의 사랑을 받기엔 내가 순수하지 못했고 그의 나이도 나에 비해 너무 어렸다. 그래서 단호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편지는 계속해서 날아왔고 그는 집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그의 혈서가 날아왔을 때는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정이 다 떨어지는 것 같았다.
(1935년 11월 12일) 봉자 보아라!
오늘『여성』이라는 잡지에 실린 너의 글을 보았다. 너는 내가 7세 때 잃은 어머니와 꼭 닮았다. 네가 문학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이렇게 편지를 올리는구나. 내가 비록 몸이 쇠약한 글쟁이에 불과하지만 너를 사랑하는 마음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뜨겁단다. 아! 사랑하고 싶어라. 네가 이 글을 볼 때쯤이면『소낙비』의 절정 부분을 마무리 짓고 있겠지. 이 글을 보거든 답장을 해주면 좋겠다. -유정-
김유정에 대한 박봉자의 일기 中에서
난 그 사람의 얼굴도 모른다. 그의 이름조차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이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누굴 향한 사랑인지 모를 절절한 고백이 담겨있었다. 나는 원인모를 위협과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옴을 느꼈다. 내가 느낀 위협과 어두운 그림자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난 그 편지를 받고난 후 서른 통의 혈서를 받았다. 한통의 편지와 서른 통의 혈서를 받으면서‘그가 도대체 누굴까?’하고 궁금증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에 대한 궁금증 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
나는 그가 나에게 보냈던 편지들의 내용을 일하다 친해진 문학평론가 김환태 씨에게 솔직히 털어놓았고 환태는 두려움에 떠는 나를 조용히 안아줬다. 그의 품에 안기면 너무 따뜻했고 마음의 동요가 조용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난 현태와의 결혼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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