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된 권위주의'의 극복이 관건이다.
'민주화된 권위주의'의 극복이 관건이다.
  • 정병기 교수(정치외교학과)
  • 승인 2012.11.14 2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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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촛불 시위와 총선시민연대는 1987년에 이루지 못한 절반의 민주주의를 완성했다고 평가된다. 이제 절차적 민주주의는 공고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투표참여율은 왜 계속 하락하고 있을까? 1988년 75.0%였던 총선 투표참여율은 2008년 46.1%로 떨어졌다가 지난 총선에서 간신히 절반을 넘는 54.3%를 기록했을 뿐이다. 1992년 81.9%였던 대선 투표참여율도 2007년 63.0%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대로 간다면 대선과 총선 모두 절반의 국민들로부터 소외되는 날이 머지않을 듯하다.
투표시간 연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된 다음에 규칙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들고 있는 패에 따라 유불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투표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다. 이틀 동안 투표하는 이탈리아 같은 나라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보면, 투표시간 연장만으로 투표참여율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릴 수는 없다. 물론 투표참여율 하락은 정당정치가 발달한 서유럽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정당정치의 효력이 다해가기 때문이다. 서유럽의 경우에는 오랜 정당 중심 정치로 인해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이 정치 자체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다. 이것을 정치/정당혐오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당정치의 발전이 늦어 정당에 대해서는 혐오증이라고 부를 정도로 유권자들의 실망이 크지는 않다. 새롭고 건전한 정당의 출현과 기존 정당의 개혁에 희망을 거는 국민들이 아직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에도 정치인들의 의식과 행태가 여전히 권위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정치 실망감은 정당혐오증과 연결되지 않은 정치혐오증이라고 할 수 있다. 구태의 정치를 탈피하려는 노력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시작됐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정당 개혁과 새로운 정당을 통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도도 구태의 정치와 정당정치의 폐해를 제대로 시정하지는 못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정치혐오즘이 정당혐오증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져 갈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등장은 이러한 배경의 산물이다. 안 후보는 정당정치를 공격하면서 정치를 바로잡자는 주장으로 선거에 임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비단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민주통합당도 안 후보 진영의 대척점에 서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후보는 정당정치를 통해 정치를 개혁하자는 주장으로 맞선다. 이 두 주장은 정당정치 대 비정당정치의 대립으로서 서로 섞일 수 없는 길항의 논리다.
그러나 정치의 논리는 연합의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문 후보는 정당정치 내에서 개혁을 시도하고 안 후보는 비정당정치권에서 개혁을 추동해 나가면서 상호 협력할 수 있다.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연합 정치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 후보는 안 후보를 기존 정당정치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안 후보는 문 후보를 정당정치 바깥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다. 개혁 없는 정당정치는 정당의 시효 만료를 앞당길 뿐이며, 인물 중심의 비정당정치로 국민을 뭉뚱그려 대변하려는 시도는 포퓰러리즘(popularism)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 두 현상들은 민주화된 사회의 또 다른 권위주의인‘민주화된 권위주의’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정당정치적 권위주의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인물 중심의 권위주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정적인 현상들의 연합은 권력 배분이라는 사익을 위한 영합일 뿐이다. 다수 국민들은 탈권위주의적인 일상적 민주주의 정치를 이루기 위한 정당정치의 개혁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때문에 비정당정치적으로 그러한 민주주의 정치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그러나 정당정치가 이러한 시도에 실패한다면 그 기대는 비정당정치로 옮겨갈 것이며, 안 후보와 같은 시도는 또 다시 계속될 것이다. 정당정치가 바로서든지 비정당정치를 통해 진정한 정치개혁을 하든지, 이번 대선은‘민주화된 권위주의’를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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