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의 명(明)과 암(暗)
서비스의 명(明)과 암(暗)
  • 박진규 씨(정치외교학 석사4기)
  • 승인 2012.11.09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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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른 아침 텅 빈 영화관이 좋아 영화관을 자주 찾는다. 텅 빈 영화관을 혼자서 차지하고 있으면 영화관을 통째로 빌린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 여자친구와 함께 하는 날이면 널 위해서 이 영화관을 다 빌린 거라며 그녀에게 생색낼 수도 있다. 실없는 농담이지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이런 허영을 즐거이 표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막이 내린 영화관을 나설 때면 이내 불편해진다. 우리 어머니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내가 먹다 만 팝콘과 콜라를 뒤처리 해주기 위해 두 손 벌리고 있을 때면 무안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막이 내린 영화관뿐만이 아니다. 화장실을 가도 먼지 한 점, 물기 한 방울 자리할 곳이 없다.‘깔끔 떤다’는 핀잔을 듣고 다니는 필자 같은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공간이지만, 그 결벽증적인 깔끔함 뒤에 있을 누군가의 어머니이기도 할 누군가의 할머니이기도 할 이들의 고된 노동을 문득 깨닫고부터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이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외식업체의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막내동생뻘 되는 젊은이들이 주문을 받기 위해 내 앞에 와 무릎을 꿇기도 한다. 몇 분 내에 음식을 배달해주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피자집들도 있다. 그 몇 분의 공약을 위해서 10~20대 어린 아르바이트생들의 고된 노동이 요구될 뿐 아니라, 그 몇 분을 위해 질주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우리 캠퍼스는 또 어떤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주변에는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널브러지는데, 어느덧 누군가가 다녀가면 이내 깨끗해진다. 그 누군가가 학교에 없는 주말이면 다시 쌓이고 쌓이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이 누군가의 고된 수고를 짐작케 한다. 환경미화를 담당한 아주머니들에다 지난 학기 법정관 주변에서는 정치행정대학 행정실장까지 솔선수범하며 수시로 쓰레기를 줍고 다녔지만, 변함없는 쓰레기들이 그들의 수고에 답했을 뿐이다. 고된 서비스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연민조차 찾기 힘들기에, 그 노동의 강도가 더해질 뿐이다.
캠퍼스 내 서비스의 명과 암은 축제 기간에 가장 절정으로 나타난다. 축제 기간 내내 아침 등굣길 교정은 곳곳이 쓰레기장이다. 그 더미와 함께 남겨지는 것 역시 청소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고된 노동이다. 매년 그 무렵이면 우리 또래 누군가의 어머니일 그녀에게, 후배 A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에게 인사조차 건넬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하다. 더욱이 그들의 노동이 돈을 받고 하는 일이기에 당연하다는 한 학생의 자유게시판 글은 학내 서비스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를 함축하는 것 같아 절망스럽다. 그리고 그 곳이 한 때‘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던 대학캠퍼스라는 사실에 절망이 더해진다.
그런 서비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가끔은 아주 편하다. 밤늦은 시간이라도 전화기를 들면 따끈따끈한 피자가 내 방으로 전해지고, 오전에 주문한 책이 당일 밤에 배달되기도 한다. 학교 앞 고기집들이 문을 닫은 반면 대형할인마트가 추석 당일에도 문을 연 덕분에, 학교에 남은 외로운 후배들을 모아 삼겹살파티를 벌일 수도 있었다. 깨끗한 화장실 덕분에, 두 달째 설사를 달고 살면서도 화장실 가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편안함이 누군가의 피와 땀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일이라면 외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요즘 자주 빈틈이 그립다. 지나치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시대이기에, 그리고 그 완벽함을 위해 노동의 희생을 요구하는 시대이기에 오히려 빈틈이 그립다. 화장실에 지저분한 물기가 그립고 자주 찾는 민주지산 자락 구멍가게에 진열된 새우깡 위에 쌓여 있는 먼지가 그립다. 영화관을 가서도, 여행을 가서도 요즘 한 시인의 시가 자꾸 떠오른다.‘빈자리도 빈자리가 드나들 / 빈자리가 필요하다 / 질서도 문화도 /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 빈자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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