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희망을 노래하다
인문학으로 희망을 노래하다
  • 김효은 대학부장
  • 승인 2012.11.0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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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는‘고깃국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안락한 집에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에 “인간의 행복은 단순히 의식주라는 척도로 매겨질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행복한 삶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라고 답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행복한 삶”은 무엇인지, 왜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문학에 대한 필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사실 요즘 들어 다른 전공자들과 대화를 하면, 지식의 수준이 전공분야에만 매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껏 전공분야만 수강하고 철저히 전공서적만 읽었기에 지식의 수준이 폭 넓을 리 만무하다. 이러한 상황은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인문학적인 호기심과 고민이 전제되지 않고선 누가 어떤 학문을 하더라도 그 분야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기 힘들 것이란 점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인문학’을 한 분야에만 매몰돼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을 채워주는 학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인문학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인문학에 대해 딱딱하고 실용적이지 않으며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의 전유물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고 인문학을 어렵게만 접근하던 방법론에서도 탈피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머지않은 미래에 만인이‘인문학’을 통해 공유하고, 소통하는 법을 절실히 필요로 할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본다.
사실 과거에도 이런 비슷한 접근이 있어왔다. 그 사례로는 1995년 뉴욕에서 알콜중독자, 실업자, 노동자를 대상으로 열린‘얼 쇼리스의 인문학 강좌’를 들 수 있다. 얼 쇼리스는 이들에게‘정신적 삶’인 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클레멘트 코스’강좌를 열었다. 많은 이들은 이 시도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과는 엄청난 호응과 파급력을 보여줬다. 수료증밖에 보장되지 않는 이 강좌에 가난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든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많이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얼 쇼리스’의 인문학 강좌가 보여준‘희망’처럼 우리에게도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시기가 더 앞당겨졌으면 한다. 이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닐까?
김효은 대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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