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 편집국
  • 승인 2012.11.0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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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싸이의“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싸이의 위상은 엄청나게 부상했고, 이제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에 달한 듯하다. 평소에 싸이라는 뮤지션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던 필자도 싸이가 출현했던 방송프로그램(힐링캠프)을 찾아서 볼 만큼 싸이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힐링캠프에서 고백한 그의 인생 역정(?)을 들으면서, 정형화돼버린 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학 입시라는 절대절명의 과제에 매달려 있다가, 대학에 들어오면 취직이라는 또 다른 관문을 뚫기 위해 스펙 쌓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대학은 새로운 지식과 진리를 발견하는 학문의 전당의 역할을 포기하고 취업률을 위한 전문학원의 역할에 목을 매고 있다. 졸업한 직후의 취업율이 대학의 존폐를 좌지우지하는 현 사회구조 속에서 대학은 더 이상 젊은이들의 먼 미래의 모습에 관심을 가질 수 없다. 그저 당장 닥쳐올 취업 준비만이 이 난국을 헤쳐 나가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순간의 이탈이 평생의 짐이 될지 모른다는 젊은이들의 위기감은 너무도 당연하고, 그들의 무사 안일주의적인 삶의 모습을 나무랄 수도 없다. 이런 우리 현실을 보면서 싸이의 그간 행적은 신선하게 느껴지기조차 하다. 무조건적 이탈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갖게 되는 이탈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 심리학자인 에릭슨은 청년기를 사회심리적 모라토리움(psychosocial moratorium) 시기라고 하였다. 이 말은 청년기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identity)을 찾기 위해 자유롭게 도전하고, 혼란도 겪어보고, 심지어는 방황도 눈감아주는 유예기간임을 뜻한다. 이런 유예기간 동안 혹독한 방황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난 사람의 모습이 싸이에 투사되는 것은 지나친 확대일까?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젊은이의 모습을 찾아주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우리가 몸담고 있는 대학부터 변모될 필요가 있다. 하버드대학 첫 번째 여성총장으로 임명된 파우스트 총장의 취임사를 읽으면서 우리 대학이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하는지를 새삼 가슴에 담아보았다.
“대학의 본질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대학은 다음 학기에 나올 결과나 학생들이 졸업한 뒤 갖게 될 직업만을 다루는 곳이 아니다. 일생의 틀을 마련하고 수천년의 유산을 후세에 전하는 동시에 미래를 결정하는 배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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