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니다,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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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진규 씨(정치외교학 석사 4기)
  • 승인 2012.09.21 2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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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는 일은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그는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최선이 시장이라는 주류경제학자들의 견해에 반박하며, 비시장영역에서 다루어지던 많은 일들이 시장영역에서 다루어지게 된 사실에 대해 개탄했다. 기업의 탄소배출권, 미국 이민권, 명문대에 입학할 권리, 멸종위기에 놓인 검은코뿔소를 사냥할 권리, 심지어 새치기할 권리, 과속할 권리, 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 공공음악회 등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부분들이 돈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 캠퍼스에서도 많은 것들이 돈으로 거래되고 있다. 돈으로 거래되는 많은 것들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숙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샌델의 주장처럼, 돈으로 거래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의문이 드는 경우도 많다. 사물함이나 강의를 사고파는 일은 학기 초만 되면 빈번한 일이다. 유명인사들의 강연이 있을 때면, 입장권을 선점한 이들과 지갑을 열어서까지 강연에 참여하려는 이들의 흥정이 오가 학내 곳곳에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대리시험이 거래대상이 되는 일도 있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주공간은 학교 홈페이지 커뮤니티이다. 이 공간에서는 사적인 고민들과 위로가 오가기도 하고, 학내 문제에 대한 공적인 논쟁이 이루어지는 등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특히 학기 초에는 강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헌책을 주고받는 데에 유용하다. 그러나 매매가 금지 된 사물함이 오가고, 강의를 사고파는 일이 주로 오가는 곳도 바로 이 공간이다. 유명인사들의 강연이 있을 때 흥정이 이루어지는 공간도 여기다. 야구에 대한 열기가 높았던 올해는 야구장 입장권을 판매하려는 시도도 잦았다. 야구장 입장권 거래 자체가 문제시될 수는 없지만, 특정인 몇몇이서 좌석등급별로 수십 장을 확보하여 매매를 시도하는 것은 학교 홈페이지를 부당이득 추구의 매개로 삼겠다는 악의로 보인다.
많은 경우 비판의 논점은 거래당사자들에게로 향한다. 그것은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주무부서의 대응이다. 예컨대 야구장 티켓을 판매하겠다는 글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올 때, 글 하단에 자리한‘신고하기’버튼을 눌러본 일이 있다. 그러나 그 글들은 자동삭제일인 180일이 지나서 삭제될 때까지 그대로였다. 어떤 이유에서 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은지에 대한 답도 없으니, 어쩌면 신고된 내용을 확인조차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예산이나 인력 부족으로 모니터링 하는 데 현실적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신고된 글에 대해서조차 대응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다른 거래와는 달리, 암표 매매는 범죄로 명시된 행위가 아닌가.
캠퍼스에서 오가는 거래들에 대한 후배들의 생각을 알아보면서 놀라웠던 것은 대다수의 후배들이 사물함이나 강의 등을 거래하는 행위에 대하여 꽤 관대한 생각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들의 논지는 대강 이렇다. 다른 것과는 달리 사물함이나 강의는 학생들에게 필수재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의 공급이 지나치게 한정돼 있기에 거래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경대학에서 복수전공을 하는 후배들은 대다수 과목의 여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후배들은 사물함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 등을 예로 들며 공급적 측면에서의 노력은 다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비도덕적 행위가 어떤 상황을 이유로 도덕적 행위로 둔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캠퍼스 내에서의 부당거래를 낳을 수 있는 공급적 측면에서의 노력은 다했는지, 부당거래를 직·간접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한편으로, 돈으로 살 수 있고 없는 것들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묻고 있는 샌델의 질문에도 우리 캠퍼스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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