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도 지고 그들도 지고
벚꽃도 지고 그들도 지고
  • 정치외교학 석사3기 박진규
  • 승인 2012.05.1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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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봄인데 벌써 꽃잎은 떨어지고 없다. 그토록 아름답던 벚꽃들이 피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떨어지고 없다. 이번 봄바람이 유독 세차긴 했지만 그 정도 바람쯤은 참아낼 수 있을 것 같더니, 이번 봄비가 유독 거세긴 했지만 그 정도 빗물쯤은 참아낼 수 있을 것 같더니 어느 벚꽃 한 잎 살아남은 게 없다.
아직 봄인데 그들마저도 사라지고 없다. 이제 겨우 십대, 이십대 초반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던 이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난봄에 이어 올봄에도 카이스트에서는 또 한 젊음이 사라졌고, 영주와 안동에서는 단 하루 차이로 두 젊음이 더 사라졌다. 그리고 그 죽음은 그저께 대구에서, 어제는 청도에서 이어지고 있다. 벚꽃처럼 아름다운 아이들이 벚꽃처럼 이르게 사라지는 것 같아 벚꽃의 낙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가운데 청소년자살률 1위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자살하는 청소년은 353명으로 하루에 0.97명에 이르며, 2009년부터는 1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또한 청소년들의 8.8%가 지난 1년 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1번 이상 했다고 답변할 정도로 일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자살’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죽고 싶다거나 죽을 방법을 알려달라는 아이들의 절규가 나열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자살하는 아이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연이은 죽음을 앞에 두고 아무 말을 할 수도 없고, 고개를 들 수도 없다. 그 이상으로 어려움에 처했어도 살아가는 더한 이들도 많고 많은데 왜 그랬냐고 답답한 심정을 담아 중얼대는 게 고작 전부다. 그렇게 중얼대다가, 그 아이들이 죽기 직전 가졌을 고민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이마저도 미안하다는 말로 마칠 수밖에 없다.
죽음의 문턱에 서 본 사람은 알 거다. 아버지의 사업실패, 연이어 찾아온 아버지의 병마, 그 후 떠나간 어머니, 학비와 생활비에 시달리다 결국 몇 번이나 목을 매야 했고, 손목을 그어야 했던 후배 A가 하는 말처럼, 죽음의 문턱에 선 누군가에게 자살은 최후의 권력일 수도 있다. 돈도 없고 힘도 없고 말할 곳도 없고, 심지어 아픈데 아프다고 소리 낼 방법조차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 죽음이 자신이 지닌 유일한 힘, 곧 권력일지도 모른다. 죽기 전에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을 외면한 세상에게 내 이야기 한 번만 들어달라고, 자신을 괴롭힌 다른 아이들에게 마지막 내 외침을 들으라고.
그러나 그 외침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오히려 많은 이들은 자살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 말할 뿐,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들이 그 자리에 향하기까지 감당해야 했을 고통에는 무감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자살을 생각한 이유가‘성적, 진학문제’와 더불어 ‘경제적 어려움’이 지배적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앞선 수치가 사실이라면, 바로 오늘도 어디선가 어떤 아이는 죽음을 고민하거나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그 아이를 위해서, 또한 비슷한 고민을 안은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주에서 자살한 아이의 학교 측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신적인 문제로 몰아갈 것이 아니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이 주장하는 것처럼, 전직대통령 때문이라고 몰아갈 일은 더욱 아니다. 죽음의 행렬을 보면서, 일부 아이들의 일탈 문제로 보거나 전직 대통령 때문이라고 몰아가기보다는 지금의 과잉경쟁교육을 다시 살피는 것이 절실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쟁을 강화시켜야만 아이들이 쑥쑥 잘 자랄 거라고 믿는 이들이 가득한 사회이기에, 아이들에게“그래도 살아야 돼”라고 말할 자신이 없어 절망스럽다. 그러하기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흔하고 흔한 말밖에 할 수 없어 더욱 절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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