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 표가 의미 있는 이유
내 한 표가 의미 있는 이유
  • 박진규 씨(정치외교한 석사3기)
  • 승인 2012.04.13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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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론을 전공하신 나의 스승은 자주 말씀하셨다. 투표용지 한 장이 바로‘종이돌멩이’라고. 옛날 70~80년대 대학생들이 독재에 맞서 던졌던 돌멩이에 버금가는 힘이 투표용지 한 장에 들어있다며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말씀이었다. 스승의 그 말씀을 몇 년째 들었지만,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우리가 언제 표 한 장으로 세상을 바꾸어 본 일이 있었던가? 더욱이 우리 대학이 있는 지역권에서는 내 한 표가 A당 후보에게로 향하든 B당 후보에게로 향하든, 아니면 무소속 후보에게로 향하든 결과는 이미 초등학생도 예견할 만큼이 아니었던가?
내 나이 스물일곱. 선거권이 처음 생긴 7년 전부터 4번이나 빠짐없이 투표권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투표용지 한 장으로 어떤 미미한 변화도 기대하지 못했다. 내가 투표하든 투표하지 않든 선거의 승자는 특정정당의 후보자였다.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이든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이든 어차피 승자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선거였던 것이다. 투표용지 한 장이 지닌 힘을 역설하시던 스승의 말씀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서 갈등이 생겼다. 후보자들에게나 유권자들에게나 선거에서‘승패’가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어차피 당선자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면 굳이 투표장으로 향할 필요가 있느냐고. 그러다가 드디어 내 한 표가 의미 있을 수 있는 이유 몇 가지를 찾았다. 선거에서‘승패’가 중요하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비록‘승패’가 정해진 선거라 하더라도 내 한 표가 의미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찾은 것이다.
우선 이미 당선자가 확정적인 선거구라 하더라도 당선자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우리 정치의 고질적 문제 가운데 하나는 많은 후보자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의식하기보다 공천권자인 정당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특정정당의 공천권을 받으면, 사실상 본 선거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당선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나 우리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표율이 높아지고 유권자들 각자의 다양한 기대가 표출되고 어우러지면, 당선자를 바꿀 수는 없을지 몰라도 당선자의 관심을 유권자들에게 어느 정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호남에서는 여당의 표가 조금이라도 더 생기고, 영남에서는 야당의 표가 조금이라도 더 생겨서 선거구도가 보다‘완전경쟁적’으로 변화한다면 당선자들은 유권자들을 지금보다 무겁게 여길 것이다. 
다음으로는 욕할 권리이다. 후배들과 술자리를 갖다 보면 전공이‘정치학’이니만큼 정치에 대한 관심이 다른 학과 후배들에 비해 높은 것을 느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들어 투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후배들이 늘어나는 것이 느껴져 안타깝다. 그 주된 이유는 투표를 해도 바뀔 게 있느냐는 회의주의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그 놈이 다 그 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그 놈이 다 그 놈’이라고 욕할 권리를 가지기 위해서라도 투표를 하는 것이 옳다.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다가 회의와 불만을 갖는 것과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고 회의와 불만만 갖는 것은 결코 다르다. 물론 우리는 언론의 자유에 따라‘그 놈이 다 그 놈’이라는 정도의 말은 얼마든 할 수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지 않고 불만만 갖는다면 그것은 투정에 불과하다.
 이 글이 신문에 오를 때쯤이면, 이미 투표율이 공개되고 당선자도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선거가 시작도 되지 않은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보더라도 영남에서는 여당의 압승이, 호남에서는 야당의 압승이 예상되기에 선거의 승패가 결코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승패 여부가 아니라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러기에 당신의 한 표는 여전히 의미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 다음 선거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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