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는 철의 여인 '윤순영 중구청장'을 만나다.
틀을 깨는 철의 여인 '윤순영 중구청장'을 만나다.
  • 김효은 기자
  • 승인 2012.03.16 16: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경북지역에서 유일한 여성 기초단체장으로 나온 담대한 이는 누구일까? 그는 바로 현 중구청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윤순영 중구청장이다. 윤 구청장은 여성특유의 조용한 리더십으로 민선 4기 동안 한번도‘재선 구청장’을 배출하지 못했던 중구를 재선으로 이끌며 우먼파워를 보여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대구·경북지역에서 유일한 여성기초단체장이었으며, 8년간 중구를 이끄는‘재선 구청장’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성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여성문제, 청년문제, 대학생들의 고용불안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는지 또한 4.11총선을 앞두고 여성공천할당제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그녀를 만나봤다.

Q1. 어떤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장에 출마하셔서, 재선까지 이뤄내셨나요?
A.요즘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시작되고 나서 여성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2006년도 그 당시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였던 시절인데, 지자체 단체장들 중에서도 이제는 여성 지방자치단체장도 나와야 된다는 여론이 일었던 것 같다. 사실 이쪽으로 출사표를 던지라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그때는 고사했었다. 왜냐하면 예술 경영을 전공했고 그 분야로 개인 사업을 했기에 행정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다. 그런데 그 당시 여성계 측에서‘윤대표가 지자체장으로 나오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추천을 받게 됐다. 그래서 지금의 4.11총선 공천을 받기위해 서류를 내고 심사를 받는 것처럼 공천심사에서 서류를 내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아무것도 없이 불모지에 도전장을 낸 것이었다. 여성이 남성들 사이에서 도전장을 내는 것이 쉽지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시 박근혜 대표가 대구 중구를 전략지구로 공천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했고, 그 동안 여성들을 위한 활동들을 많이 했다. 특히 여성단체, 전문직여성 정보 파트 분야 등 여성파워네트워크와 관련해서 일했다. 그리고 선거 당시에도 토론경선과 일반경선 모두 거쳐서 당당하게 당선됐다.
“6년 전 나의 모습이나 지금 나의 모습이나 언제나 똑같이 한다. 아마 몸무게까지 똑같을 것이다”

그녀의 이 한 마디는 중구청장으로서 임기 8년이 끝날 때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있기에 가능했다. 
4년의 중구청장으로서의 임기가 끝나고 재선이 됐는데, 재선이 쉽지 않은 것은 맞다. 왜냐하면 4년 동안 일한 것에 대한 실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죽기 살기로 일했다. 4년 뒤 재선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이제 4년이 끝’이라는 초심의 마음가짐으로 일했다. 그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일했기에 누가 뭐라 해도 뒤도 안 돌아 보고 일했다. 사실 여성구청장으로 산다는 것의 가장 큰 무기는 일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을 함에 있어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필요하다. 내가 내세운 공약은‘정직하게 하겠습니다’,‘투명하게 하겠습니다’였다. 내가 가진 무기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남들보다 정직하고 투명하게 하면서 성과를 내는 것이었다. 사실 여성들의 경우 지역 터전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가 남성에 비해 약하다. 여성들은 지연, 학연도 남성에 비해 부족한 측면이 있기에 일적인 면에서 더 열심히 해야 인정받는다. 지금도 여성공천을 준비하는 분들이 조언을 구하기 위해 오면 그 분들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도움의 말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Q2. 구청장님께서는 여성지방자치단체장이 많지 않는 현실에서 이 자리까지 오시면서 많은 난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있었나요?  
A.솔직히 어렵다고 생각한 것은 없다.  요즘은 공무원도 여성이 더 많고, 일 잘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고, 어느 정도 여성에 대한 양성평등의 시대로 오면서부터는 고위직 여성들도 많이 있다. 여러분들 세대에서부터는 여성들이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리더그룹의 권력계층구조에서 보면 학교를 예로 들어보면 여교사가 많은데 교장은 남교장이고, 228개 단체에서 여성단체장은 6명밖에 안 된다. 사실은 3%밖에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사회에서 보는 시선이 국회의원, 장관, 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들 같은 이런 조직을 끌어가는 사람으로 남성이 많아야 한다고 보는 시선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여성청장이기에 남들보다 일을 2배, 3배 더해야 뭔가를 하는구나 하시고 알아주신다. 사실 남들이 쉴 때, 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적 여건 때문에 힘들지 일적인 부분에서 힘든 것은 없다. 하지만 경상도 쪽에서는 여성에 대한 비하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고, 여성 국회의원에는 인색한 점은 안타깝다. 일로서만 따지면 여성들이 일 더 잘한다. 허나 이제 사회에서 리더그룹이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한명 그리고 한명 더 이렇게 점점 늘려가면서 여성파워를 만들어가야 한다.

Q3. 청장님이 생각하는 행정이란 무엇인지?
A.청장이 되기 전 예술 기업 쪽으로 일을 했었는데, 갤러리, 공연 기획 쪽으로 공부를 했고,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구청장 일을 시작하게 돼 수료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공부와 경험이 행정의 토대가 됐다고 믿는다. 문화예술 기획이라는 것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결국은 그러한 경험과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행정을 더 즐겁고 재밌게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과 어떻게 하면 문화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까 했던 고민이 행정과 접목할 수 있게 됐다. 행정은 하수구 문제에서부터 고급문화까지 다 다뤄야 되는 것이 행정이라 생각한다. 생활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내 삶이 그런 쪽에서 즐기면서 생활해 왔기 때문에 행정을 하는 데 생소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행정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행정에 접목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토론공천 당시에‘당신이 행정을 해봤어’라는 질문에‘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행정이 아니냐’,‘행정을 하려면 무조건 행정학과를 나오고 공무원을 해봐야 되는 것인가’라고 반박한 적이 있다. 사실 이뿐만 아니라 이렇게 생각을 규격화하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본다.

Q3. 중구전체를 여성친화도시로 만들기 위한 행정을 추진하시는데 어떤 것인지?
A.여성만을 좋아하는 도시를 만들자 이런 말이 아니다. 여성을 포함한 어린이, 노인 등 보호와 배려가 필요한 일반다중을 대상으로 하는 의미를 담고있다. 가정의 주춧돌인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다. 이런 뜻에서 볼 때 여성이 행복한 도시라면 모든 시민이 행복한 도시가 되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중구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달서구와 함께 여성친화도시로 선정(2010.11.17) 됐으며, 그와 관련된 조례제정, 위원회 구성 등 제도적인 장치와 함께 실천 가능한 사업들을 발굴 추진하는 데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 

Q4. 중구청장님이 추진하고 계신 사업 중 애착을 가지고 추진하시는 사업을 소개해주시고, 어떤 이유에서 추진하게 되셨나요?
A.역사문화중심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2007년부터 근대역사문화벨트구축사업을 추진했다. 이는 동성로 공공디자인사업과 근대문화골목 디자인 개선사업 등을 통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 활기가 넘치는 명품도심관광지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특히 그 연장선에 ‘중구도심골목투어’는 이제 도심의 역사문화를 스토리텔링한 명실상부한 명품투어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대구지역 유일의 창조지역 사업으로 선정된「대구읍성 상징거리 조성사업」,향촌동전후문화재현관 조성사업, 문화관조성 사업들을 통해 전통양식의 보존과 현대의 조화를 통해 역사문화 자원의 가치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할 예정이다. 기억에 남는 일은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 네개의 성의 축을 잇는 옛 성곽을 재현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노점을 다 없앴는데, 큰 이유는 노점 상인들이 도심 한 복판에 있으면서 미관을 해치는 등 각종 문제를 정리하지 못했는데, 그 당시 내가 이걸 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내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때‘이를 성공하지 못하면 내 뒤를 따라오는 많은 여성들을 울리게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성공했기에 많은 곳에서 벤치마킹하러 온다. 그 당시 노점상 중에서 기초수급자들이 많았기에 이들을 구제해주고, 이와 관련된 조직폭력배들을 추려내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가꿔나가는 것이 문화라고 본다. 모든 것에 문화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데, 이는 발전시키고 사람들을 즐겁게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Q5. 현재 많은 대학생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청장님은 어떤 대학생활을 보내셨고, 현 대학생들의 고용불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나는 부모님한테 돈 받아서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막내였기에 언니, 오빠들에게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내가 공부해서 대학 다닐 때는 돈을 벌어서 중퇴하고 한참 있다가 돈을 벌어서 다시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면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차근차근 부모에게 돈 받아서 공부를 하진 못 했다. 그 당시에는‘일하는 것’그리고‘가진 것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뭐든지 하면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진 것이 없어도 체면이나 위신을 따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가 사회적으로 풍요로웠던 시기도 아니고, 다 같이 고생했던 시기다. 나는‘뭐를 못해’이런 생각으로 대담하게 도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즘 대학생들도 고용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2030청년 창업도 추진하면서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자기 일은 자기가 개척해야한다’는 사실이다. 실제 업무를 보니 기업인들은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리고, 학생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황당한 꿈을 꾸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런 부분이 안타깝다.‘그 정도 돈 받고 그 고생 하나?’라는 부모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여러 아르바이트나 사회적 경험을 쌓으면서, 이를 실질적으로 내 인생의 인턴과정이라 생각하고, 나를 되돌아봐야 한다. 노동을 해도‘내가 막노동을 왜 해?’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러한 경험도 해봐야 사장도 될 수 있고, 근로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말갛게 가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Q6. 여성공천할당제에 대한 구청장님의 생각은?
A.공천을 많이 해줘야 한다. 그런데 약속이 안 지켜지고 있고 여성공천할당을 전부 30%로 얘기했는데, 신청자 수가 10%가 안 되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대구에도 신청자는 많은데 함량미달 신청자도 많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공천이 되는데 여성을 가지고 실험할 수도 없고, 차라리 여성들이 공천 신청할 수 있는 여건을 처음부터 마련해줘야 한다. 실질적으로 공천할당을 거창하게 하기보다 10%라면 정확하게 10%라도 지켜주면 괜찮을 것 같고 우리나라에서 여성공천할당문제가 더 심도 있게 접근돼 상처받는 여성들이 없도록 해줘야 된다. 또한 여성들도 남들이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또한 여성정치인들도 서로서로 받쳐주면서 함께 가야하는데 경쟁 심리로 인해 서로를 깎아내리는 것은 오히려 여성들이 설자리가 적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자체장을 그만두고 공천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주민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이 약속을 저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효은 기자 gysl329@ynu.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