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책, 내부의 적
아픈 책, 내부의 적
  • 박진규 씨(정치외교 석사 2기)
  • 승인 2011.11.03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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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도서관 로비에서 ‘아픈 책 모둠’이라는 이름으로 훼손 도서 전시전이 열렸다. 한편 도서 훼손 방지를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어, 그에 관한 대안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이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게 여기는 사물함까지 공모전의 상품으로 내걸 정도이니 그 열의가 대단하다.
도서관 자료를 이용하다 보면 도서 상태가 좋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출한 자료가 찢어지고 더렵혀진 것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비단 나의 예민함 때문만은 아니리라. 학우들 다수는 도서관에서 대출받은 자료의 상태가 좋지 않아 불편했던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도서관 자료 상태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재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전의 취지에 일부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번 전시전이 도서관 행정을 담당한 직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그간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보아 온 훼손도서와 전시전에서 본 훼손도서를 살피면, 학우들의 부주의나 실수로 훼손된 자료가 대부분이라는 점은 인정할 만하지만 도서관 측이 직무에 최선을 다했더라면 막을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예컨대 낙장이나 표지 파손, 책등 파손 등은 대출자 누군가의 부주의나 훼손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반납 받은 초기에 도서관 측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그 지경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얼마 전 내가 대출받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라는 책도 그랬다. 책을 받아보니 책등 부분 위쪽이 살짝 벗겨진 상태였고 책장 앞쪽과 뒤쪽의 몇 장은 이미 떨어져 나가 있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상태의 책을 반납하더라도 대출데스크에 앉아 있는 행정인턴들이 그 책을 확인하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당연히 책을 손보는 것도 ‘이벤트’같은 일일 것이다. 자료를 처리하는 태도를 보면, 도서관 행정 직원 모두의 인식 수준을 짐작하게 된다.
도서관의 행정편의주의는 이제 어색한 일이 아니다. 이미 1년 전(본지 2010년 10월 6일 자) 기고했던 것처럼, 도서관 측은 자신들의 권익이나 편의만을 극대화하려 한다. 도서를 예약했으나 앞선 대출자가 연체하는 경우, 도서관 측은 손을 놓고 예약자에게 연체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자력구제를 권한다. 그리고 사물함 부정행위가 벌어지자 사건의 원인에 대한 성찰은 결여하고 단 6명을 과잉 처벌하는 것으로 학우들에게 겁을 주려 했다. 시험기간 도서관 개관시간은 오전 7시였으나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9시로 늦추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했으나 도서관은 거침없이 침묵을 이어가고 있으며, ‘아픈 책 모둠’ 같이 역시나 자신들에게 편리한 방식의 일처리로 화답하고 있다.
‘아픈 책’을 보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아픈 일이다. 그러하기에 ‘아픈 책 모둠’이라는 전시회는 많은 학우들과 공감할 부분이 없지 않다. 그 아픈 책들을 보면서 우리는 반성하고 있다. 물론 책을 읽으면 습관적으로 책 모서리를 접어두는 버릇을 가진 나라서, 나는 더욱 반성하고 있다. 하지만 도서관 측이 할 일은 외부로 그 책임을 돌리기 전에, 스스로의 내부를 먼저 톺아보는 일이다. 지금처럼 전시행정을 벌이는 것은 분명 그들에게 편한 일이겠지만 온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많은 경우 그러한 것처럼, 적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반성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도서관 직원들의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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