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를 부추기는 상징 조작의 위험
증오를 부추기는 상징 조작의 위험
  • 주형일 교수(언론정보학과)
  • 승인 2011.09.15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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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상징을 조작할 수 있으며 동시에 상징적 의미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동물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아프리카 최강의 육식동물인 사자가 사냥 도중 자신이 열세에 있다고 느끼면 자존심이고 뭐고 없이 뒤돌아 도망을 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걸 보고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가 참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애시 당초 사자에게는 수치심 따위는 없는 것이다. 사실 최강이니 동물의 왕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 상징 조작을 통해 부여한 의미가 아닌가?
인간은 세상 만물과 행동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산다. 그 의미는 대부분 사물의 본질과 관계없이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지만 인간은 때로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희생하면서까지 그 의미에 집착하기도 한다. 생존이 걸린 게 아니라면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는 사자와는 달리 인간은 국가를 위해, 정의를 위해, 신을 위해, 자존심을 위해 자신의 몸과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 기꺼이 뛰어든다. 이처럼 인간은 상징적 의미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상징을 어떻게 조작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상징 조작 능력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는 구별되는 섬세한 예술 활동을 통해 쾌락을 향유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물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의 폭력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것은 증오를 만들어내는 상징 조작을 통해 가해지는 폭력이다. 인종, 민족, 지역, 성적 취향, 장애, 계급, 이념, 종교 등의 이유로 사람들을 비하하고 무시하며 나아가 그들을 영원히 사회적 약자로 만들거나 말살하기 위해 상징들을 조작하고 확산시키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조작된 상징들은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인터넷의 댓글들을 통해, 심지어는 일간신문의 대형 광고를 통해 퍼져나간다. 그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증오를 심고 키우는 일을 한다. 그리고 언어적 폭력을 넘어 상해, 살인과 같은 물리적 폭력을 적극적으로 유발한다.
다양한 취향, 사상, 인종, 민족, 문화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상징 조작이 만들어내는 증오 발언(hate speech)과 증오 범죄(hate crime)는 사회의 존립을 위협하고 사람들을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살게 만든다. 많은 나라들에서 증오 발언과 증오 범죄를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그것들이 사회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에서도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선천적 특성(인종, 민족, 성, 성적 취향, 장애 등)에 대해 상징 조작을 통해 공격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증오 발언과 증오 범죄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넓게 퍼져 있지 않다. 인터넷에서의 증오 발언은 단순한 욕설로 치부되기 일쑤이며 지역감정을 이용해 자신의 세를 유지하기 급급한 정치인들은 특정 지역에 대한 증오 발언을 공공연히 내뱉는다. 종교 단체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증오 발언을 일간신문에 버젓이 광고까지 할 정도이다. 같은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증오를 낳고 표출하는 상징 조작이 오히려 사회를 지키기 위한 정당하고 정의로운 행위처럼 포장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모두 언어라는 상징을 조작하는 일이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현하고 비판하는 것과 증오를 만들어내는 것은 다른 일이다. 더구나 우리가 택하지도 않았고 바꿀 수도 없는 선천적 특성을 공격하면서 상징 조작을 통해 증오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범죄로 인식돼야 하며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제정돼야 한다. 그런 상징 조작은 자신과 타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하는 악의에 찬 행위이다. 한국이 다문화사회에 접어든 지금 증오 발언은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가 돼 가고 있다. 증오를 조장하는 상징 조작을 막을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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