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그리고 서양에서 귀신이란?
한국에서, 그리고 서양에서 귀신이란?
  • 김기호, 안의진 교수
  • 승인 2011.08.3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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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한국의 귀신과 인간-김기호 교수(국어국문학과)
"귀신 이야기는 자신의 현재 모습과 미래의 모습을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더운 여름철에 극장가에서는 귀신영화나 호러영화가 많은 인기를 끈다. 자신에게 공포를 선물하는 이런 영화를 굳이 시간을 내서 보는 이유는 아마도 전율의 미학 때문일 것이다. 가시적인 존재인 인간이 비가시적인 존재인 귀신을 인식함으로써 인간 자신의 한계성을 탐지하고 그것을 넘어서려고 할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전율을 느끼는 데는 귀신 혹은 이형(異形)의 존재들이 주인공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을 관객인 자신들도 비슷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길흉화복이나 진로, 혹은 운명에 귀신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많게나 적게나 끼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실제로 우리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세계관이다. 철학관이나 무속인의 집을 방문하여 상담을 한다든가, 부적을 쓴다든가, 액땜을 한다든가, 굿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불리·불합리한 일들을 이른바‘잘 본다’,‘용하다’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해명을 부탁하고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은 잘 모르겠고 자신의 탓은 아닌 것 같으니 나보다는 더 나은 식견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데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과 해결책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귀신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직접적으로는 귀신에게 빙의를 당했다든가 귀신 때문에 악몽에 시달린다든가, 혹은 조상이 자꾸 꿈에 나타나 묘 자리를 새 걸 요구한다던가 하는 경우도 있다. 죽은 자, 혹은 귀신이 자신의 원망이나 소망을 산자를 통해서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교적인 견지에서의 귀신은‘인과응보’와 관련이 있다. 은혜를 갚는다든가, 혹은 원한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이에 속한다. 두 가지 이야기를 들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자식 없이 일찍 요절할 운명을 타고난 제자가 훈장이 죽자 그의 외동딸을 도와주고 명당을 잡아 초상을 치러주었더니, 훈장이 저승에서 염라대왕을 도와 제자의 수명을 여든 살로 늘려주고 아들 셋을 점지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제자가 자신과 자신의 딸을 위해 덕을 베풀었기 때문에 훈장이 귀신이 되어서도 이에 대한 보답을 한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어사 박문수가 억울한 귀신의 원한을 풀어주고 그에 대한 도움을 받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박문수가 과거를 보러가는 도중에 품행이 의심스러운 여인을 만나는데, 그녀가 결혼하기 전부터 정부였던 총각을 만나는 것을 보고, 이들에 의해 대감집 아들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알게된 박문수가 서울로 가던 중에 대감집 아들 귀신이 나타나 과거시험 답안을 알려주고 과거에 급제한 후 어사가 된 박문수는 그들의 범죄 사실을 확인하고 대감집 아들의 시체를 찾아주게 된다. 어사 박문수 이야기는 귀신이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 자신과 인연이 닿은 사람을 도와주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한을 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은혜를 갚고 원한을 푸는 데 정확한 인과의 고리가 있으며 그 인과의 고리는 산자나 망자들에게 이미 정해져 있는 것도 있으며 또한 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인과의 고리를 찾기가 힘이 드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 그것인데 농부가 배나무를 길렀는데 까마귀가 날아가면서 배나무의 배가 떨어지자 농부는 까마귀가 배나무를 건드려 배를 떨어뜨린 줄 알고 화를 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곰곰 생각해보면 까마귀는 그냥 나무에서 날아올랐을 뿐이고 배는 떨어졌을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누구의 탓이겠는가. 학생들이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겠지만‘간 때문’일까.
유가적인 견지에서 귀신은 이른바 제사에서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있으면 추석이라 벌초를 하러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제사를 지내는 집도 많을 것이다. 벌초는 단순히 무덤이 보기 좋도록 무덤에 자란 풀을 깍아 내는 것이 아니다. 보기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망자의 집을 청소하고 정리·정돈 한다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망자는 육신이 없어 하지못하니 산자가 대신 해주는 것이다.
이것에는 망자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육신은 없지만 망자와 산자를 동일시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리고 제사는 귀신 숭배나 이형의 존재의 힘을 빌리는 서양의 오컬트적인 요소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자신의 뿌리인 선대를 대접하여 자신과 가족,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복’을 내려달라는 소박한 바람이다.
정치학적인 해석을 가하면 산자보다는 윗대인 망자에 대한 공경을 제사를 통해 표시하여 구성원간의 동질성을 확보하여 구성원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일종의 통치이데올로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정치학적인 해석에 치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제사를 통해서 죽은 자의 의미성과 역사성을 반추하여 자신의 의미성과 역사성을 현재에서 확인해보는 일종의 제의라고 보면 어떨까. 설마 초혼(招魂)한 귀신이 차려논 제사상의 음식을 드시지는 않을 것이니까!
입장에 따라 표현과 내용은 다를지 몰라도 공통적인 입각점은 삶과 죽음은 단절의 과정이 아니라 순환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귀신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그건 개인의 신념과 경험에 따른 것이기에 이른바 귀신의 실재여부에 대한 논란을 제기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귀신과 관련된 담론은 삶과 죽음이 순환적인 과정이며 인간의 당면과제이기에 자신의 현재 모습과 미래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서양의 호러스토리-안의진 교수(언론정보학과)
"사람들은 무섭고 역겨운 괴물스토리에 왜 눈길을 돌리는 것일까?"

한국에서 호러영화가 주로 여름에 개봉되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여름 이외의 계절에 호러 영화가 더 많이 개봉된다. 괴물 혹은 귀신스토리를 즐기는 이유가 한국과 미국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호러영화를 기준으로 볼 때 한국과 미국의 또 하나 중요한 차이점은 괴물(혹은 몬스터)의 유형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더 다양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호러스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을 한 귀신(여고괴담 같은)이 중심이라면 서구에서는 살아있는 시체(좀비), 혼합된 형태(사람과 기계의 혼합, 사람과 곤충의 혼합, 동물과 동물의 혼합, 사람과 물체의 혼합 등), 사이즈의 확대(거대한 개미, 킹콩 등), 집단화(무리를 지은 형태) 등의 방법을 통해서 괴물의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의 귀신이 여자가 중심이라면 서구의 귀신이나 괴물들은 여자보다는 남자나 혹은 성별이 구분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으며, 괴물이 탄생하는 근거도 한국이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억압된 모순이나 한과 같은 발생이유를 갖는 것에 비해, 서구의 괴물들은 여러 가지 발생과정(미친과학자에 의해 탄생되거나, 외계에서 침입하거나 등의)을 갖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귀신이야기는 공포의 장르에 들어가고 공포의 장르 속에는 자연재해를 포함한 다양한 하위장르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Noel Carroll이라는 미국의 학자는 아트호러(초자연적 괴물이 중심이 되는 공포스토리)라는 장르를 개념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의 아트호러 장르는 인간을 위협하는 위험한 괴물(일반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정상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에 대한 스토리로서 규정되고 있다. 이러한 아트호러의 스토리는 사실 전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지만 특히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영국과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캔슈타인(1818년)의 출간 전후 50년부터 지속된 장르로서 아트호러는 인간의 감성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유럽에서 체계적으로 생산되었고 귀신이나 괴물을 창조하는 방법도 앞에서 언급한 융합, 분열, 거대화, 집단화 등의 공식화한 방법을 통해 무한할 정도로 다양하게 괴물의 외형과 속성을 대량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한국의 괴물들이 제도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억눌린 인간의 억울함과 원한을 표현하고 그러한 귀신스토리를 보며 관객이나 수용자들은 억눌린 감정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심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미국과 유럽의 괴물스토리는 그런 억압적 심리적인 이유보다는 관객이나 수용자의 엔터테인먼트적 즐거움을 위해서 간단한 조합 공식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괴물스토리의 중심인 괴물이나 귀신 등은 보기에 아름답거나 유쾌한 것이 아니다. 그런 역겹고 흉악하고 위험스러운 것들을 왜 좋아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호러영화, 귀신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싸이코나 특정 매니아 층이 아닌 일반적 수용자라고 가정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유럽이나 미국에서 괴물스토리를 즐기는 사람들도 정신적 이상자들이나 괴물스토리에 집착하는 광적인 매니아들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괴물스토리의 소비가 미국과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선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베트남전후 시대부터 최근 수십년간 호러는 가장 지속적이고 넓게 유포되는 장르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스티븐 킹(Stephen King), 클리브 바커(Clive Barker)같은 작가들을 필두로 흡혈귀, 좀비, 늑대인간, 악령, 트롤(거인괴물), 에일리언 등 이루 다 명명하기 힘든 다양한 괴물스토리가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일상적 즐거움의 소스로 창작되어 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무섭고 역겨운 괴물스토리에 눈길을 돌리는 것일까? 한국에서 여름에 그러한 영화들이 많이 개봉된다는 것은 깜짝 놀라고 그럼으로써 더위를 쫓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제작자들이 그런 의도에서 여름에 개봉한다고 가정한다면) 여름 아닌 계절에 더 많이 개봉되는 미국과 유럽의 호러영화들을 볼 때 계절과 관련 없는 어떤 다른 매력을 호러영화들이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괴물스토리의 매력을 Carroll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인간은 알고자하는 욕구, 즉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호러스토리에서 나오는 흥미와 즐거움은 무엇보다도 발견, 입증, 확증의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존재할 수 없는 괴물의 발견, 괴물의 모습, 특성 등을 확인하고자하는 호기심, 그리고 과연 그 괴물을 어떻게 퇴치하는지 알고 싶은 등등의 호기심으로 관객과 수용자는 무서움과 혐오감을 감수하며 숨을 죽인 채 끝까지 호러스토리를 즐긴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괴물들이 주로 혐오스런 특성(타액, 벌레 등을 사용한)을 갖는 이유는 호기심의 보상심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괴물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면 더럽고 흉악한 비주얼 경험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충족되는 호기심은 즐거움을 배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탐정스토리나 과학수사 스토리처럼 호기심을 만족하는 장르와 호러장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호러스토리의 독특함은 관객이 추구하는 호기심의 핵심이 괴물이라는 초자연적 존재라는데 있다. 있을 수 없는 것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즐거움이며 이는 “매혹”적인 감성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라고 볼 수 있다. 호러에 등장하는 괴물이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죽은자도 아니고 산자도 아닌, 문화적 규범을 위반하는 비정상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관객과 수용자에게 매혹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인간의 규범적 범주를 벗어난 것들이며 불가능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매혹을 느끼며 그러한 매혹의 감정은 호러, 괴물스토리를 추구하는 우리들의 호기심과 함께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호러스토리의 매력은 이처럼 공포감과 혐오감을 감수하고 추구하는 호기심과 매혹감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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