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휴전선 155마일을 걷다
대학생, 휴전선 155마일을 걷다
  • 박준범 기자
  • 승인 2011.08.3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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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국토대장정을 참여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와‘고생을 해봐야 알지’라는 등의 의견이었다. 기자는 걷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의견들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출발 전날 8시 30분까지 모이라는 문자에 들떠 있었고, 어린아이들이 소풍가는 기분처럼 마냥 설레었다. 집합장소인 중앙도서관 서편광장에는 8시 30분이 가까워지자 참여한 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인원점검을 하고 각자의 이름표를 받아들자 그때서야 국토대장정을 한다는 실감이 났다. 짐을 싣고 우리는 통일전망대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잠을 설쳐서 그런지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잠이 몰려왔고 강원도 인제군 근처 휴게소에 도착해서야 잠에서 깼다. 정신없이 점심을 먹고 30분쯤 버스로 달려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통일전망대에서 옷과 모자 등 물품을 받고 출정식을 가졌다. 
출정식을 마치고 고대하던 첫 행진을 시작했다.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걷기에는 지장이 없었고 오히려 걷기엔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그렇게 1시간 30분 쯤 지나서 인제군 대진중·고체육관에 도착해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이렇게만 걷는다면 14일 동안 충분히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 후에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됐다. 각 조의 이름, 구호 그리고 노래를 만들어서 발표를 했다. 상품으로는 하루 가방 들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조를 자랑하기 위해 너나할 것 없이 열심히였다. 그렇게 첫째 날 밤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태풍의 북상으로 어려운 여정 시작돼=둘째 날이 밝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태풍 ‘메아리’가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에 따라 가방에 우의를 덮고, 우의를 입고 길을 나섰다. 우리를 맞이한 것은 강한 바람과 쏟아지는 빗줄기뿐이었다. 처음으로 긴 거리를 걸어서 그런지 지쳐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김혜원 씨(국제통상3)는“두번째 날이 가장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힘든 티를 내지 못했다. 참여했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날씨는 더욱 악화되었고, 당초 예정됐던 텐트취침 계획을 수정해 급하게 민박집에서 머무르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그렇게 좋지 않은 조건 속에서 우리는 걷고 있었다.
태풍 속에서 맞이한 셋째날에도 둘째날보다 더 많은 비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이날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한계령을 올랐는데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고 있어 걷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더 어렵게 만든 것은 날씨였다. 비는 쉬지 않고 내렸고 올라갈수록 기온은 떨어져 입김까지 나왔다. 휴식시간이 주어졌지만 다들 추위에 떨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이날의 일정은 1시쯤해서 일찍 끝이 났다. 하지만 우리가 머문 숙박지에서는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밤늦게까지 씻지도 못하는 고충도 있었다. 김정은 씨(유아교육2)는“비가 너무 많이와 걷는 데 힘들었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고 했다. 이날 저녁 프로그램으로 자신에게 편지쓰기와 조별로 인생곡선을 발표하는 시간을 마련하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넷째 날부터는 걷는 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하루만에 30km이상의 거리를 걸어야했기 때문이다. 이에 임송이 씨(식품영양2)는“걷는 속도가 빨라서 경치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으며, 걷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에 학생지원팀 여현기 씨는“특정구간에서 빠르게 가는 구간이 있었다. 하지만 환자조를 별도로 만들었고,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은 차량으로 이동하도록 했기 때문에 단순히 속도가 빨랐다고 하기에는 어렵다”고 밝혔다. 32km를 걸은 이날은 학생들의 발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고 스텝들이 정성껏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남자들은 처음으로 샤워실이 아닌 천막에서 샤워를 했다. 물이 너무 차가워 샤워하는 내내 괴성이 난무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햇빛을 다섯째 날에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전날의 여파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힘겹게 힘겹게 걸음을 유지했다. 이날, 비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연속적인 오르막을 걷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량에 탑승하는 학생들이 증가했다. 하지만 햇빛에 빨래를 말리기 위해 행진시 학생들이 옷가지를 가방에 메달고 가는 모습은 흡사 피난행렬을 연상케 했다. 취침은 해안초등학교에서 이뤄졌다.
다음날은 행진이 없는 날이었다. 환자들은 병원으로 향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안보전시관으로 이동해 안보에 관한 영상을 시청했고, 북한이 지속적으로 남한 침입을 시도한 땅굴을 확인했다. 이어 평화의 댐에서 평화의 종을 울렸다. 이번 국토대장정의 목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또한 새터민을 초청해 안보 강연도 진행됐다. 2007년 탈북한 노령련 씨는 북한의 실상과 탈출기를 생생하게 전하며 남한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강조했다. 그렇게 꿀맛 같았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행진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날이 밝자 여지없이 행진은 시작됐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서서히 학생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져 가고 있었고, 다들 지쳐 보였다. 전날 하루 쉬어서 그런지 더욱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렇게 6월의 마지막 날이 흘렀다.
강원도 화천군에서 맞이한 7월의 첫 날은 코스 중 두 번째로 긴 34km를 걷는 일정이었다. 우리는 철원에 진입해 근무를 서고 있는 군인들과 서로 위로와 격려를 하며 민간인출입통제선을 통과했다. 무사히 일정을 마친 우리는 고대하던 첫 야외취침을 했다. 실내에서만 취침을 해 텐트가 불편할 수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내린 비와 실내취침으로 우리는 야외취침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장거리를 걸어서 피곤한 탓인지 순식간에 수면을 취했다.
국토대장정의 후반부가 되면서 학생들은 고통을 참으며 자기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7월 2일은 래프팅이 있는 날이었다. 래프팅하는 장소까지 12km를 걷는 일정이었다. 그 동안의 일정보다 짧은 거리였지만 그리고 래프팅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이날 행진은 가장 힘들었다. 이에 장혜진 씨(중국문화정보전공4)는“물집이 잡혀 걸을 때 너무 힘들었다. 그 고통으로 계속 걸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래프팅에 참가하지 못한 이선아 씨(유아교육2)는“개인적인 이유로 참가를 못했지만 원래 일정과 다르게 래프팅이 잡혀 아쉬웠다”며 일정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한탄강에서의 래프팅은 국토대장정이라는 것을 잊고 모두가 신나게 놀 수 있었던 기회였다. 행진이 끝나고 야간 일정으로 RQ검사가 진행됐다. 이를 통해 역경이나 고난이 닥쳤을 때도 자신이 얼마나 긍정적인 힘을 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학생들, 행진 이후 프로그램에 아쉬움 가져=7월 3일은 대장정 중 가장 긴 코스인 38km를 걷는 일정이었다. 이를 기념하기라도 하듯이 하늘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렸다. 우의를 입었지만 소용 없었다. 10분, 20분의 짧은 휴식시간과 주어지는 간식들만이 우리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해가며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행진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38km의 대장정은 끝나가고 있었다. 취침할 장소인 군남초·중학교로 들어서자 내 자신이 너무 뿌듯했고 자랑스러웠다. 야간프로그램으로 계획됐던 포크댄스는 학생들이 많은 기대를 했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물집과 발목 부상으로로 인한 환자들이 많아 진행할 수 없었다. 이에 이재민 씨(전자공학전공3)는“포크댄스와 하트쪽지게임에 대해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진행되지 않아 아쉽다. 행진이 끝난 뒤 프로그램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제 남은 행진 기간도 4일이었다. 하지만 끝나서 좋다는 생각보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토대장정을 하는 사람들이 마치 가족인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5일은 12km로 다소 짧은 거리였다. 하지만 누적된 피로와 강렬히 내리쬐는 햇볕 때문인지 다른 날보다 더욱 힘들었다. 이날 행진은 빠르게 마무리 되었고, 차가운 물로 계속 샤워했던 우리에게 드디어 목욕탕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따뜻한 물로 씻는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샤워를 마치고 저녁에는 자유발언대가 진행됐다. 많은 학생들이 참여를 하진 않았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좋은 기회였다.
드디어 마지막 행진 날이 다가왔다. 모두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출발했다. 걷다보니 도착지인 임진각의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정표를 보자 그 동안 걸었던 것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조별로 손을 잡고 들어 임진각에 입성했다. 행가래를 하고 물을 뿌리며 완주의 기쁨을 나눴다. 이어 연천군남 청소년 수련원으로 이동해 뒷풀이를 했다. 다음 날 서로에게 롤링페이퍼를 남기며 학교로 향했고, 인문관 강당에서 해단식을 진행했다. 이렇게 320여km의 대장정은 끝이 났다. 끝이나면 좋을 것 같았지만 막상 끝이 나니 아쉬웠다. 김은섭 씨(첨단기계전공2)는“사실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힘들었다. 국토대장정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국토대장정의 소감을 밝혔다.
13박14일 동안 발에 물집이 잡히고 발목에 염증이 생겨 힘들었고, 그 고통을 참으며 걷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고 끈기와 인내를 배웠기 때문이다. 또한 좋은 사람들을 얻었다. 국토대장정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방학도 아마 무료하게 지냈을 것이다. 국토대장정은 나에게 많은 것을 얻게 하고 깨닫게 해준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RQ : 회복탄력성지수로 역경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의 정도를 총괄하여 하나의 수치로 나타낸 것. 감정통제력, 충동통제력, 낙관성, 원인분석력, 공감능력, 자기효능감, 적극적 도전성의 7가지 요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대학교 국토순례대장정의 변천사를 알아본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우리 대학교 국토순례대장정. 3회까지 오는 동안 국토순례대장정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왔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공동체 자치규약 만들어=2009년 열린 제1회 국토순례대장정에는 총 240명이 참여해 15조에 16명씩 구성됐다. 일정도 8월 20일부터 27일까지 7박 8일로 진행되어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인 155km를 걸었다. 우리 대학교를 출발하여 문경시, 안동시, 청송군 그리고 영덕군을 거쳐 우리 대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구간이었다. 또한 8월 중순에 일정이 잡혀 있는 것이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날에 ‘공동체 자치규약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이 새로웠다. 이는 공동체가 지켜야 할 자치규약을 학생들 스스로 만들어 자율공동체를 형성하는 의도를 가지고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마지막 날에는 7일간 일어났던 일들을 연극제라는 축제를 통해서 되돌아 보고, 각자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진 것도 새로웠다.
◆전국으로 확대된 국토대장정 경로=2010년 열린 제2회 국토순례대장정은 1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일정도 8월달이 아닌 6월 28일부터 7월 8일까지 진행되는 10박 11일 구간이었다. 160명의 학생들이 참여했고 20조에 8명씩 배치돼 현재 국토순례대장정의 모습과 유사했다. 일정이 3일 정도 연장됨에 따라 거리도 194km로 증가됐다. 그리고 1회 때 경상북도 일대에서만 했던 것과 달리 2회에서는 고성, 양양을 거쳐 단양, 문경 그리고 영천으로 이어지는 경로로 구성됐다. 2회 때도 공동체 자치규약을 만들어 자율공동체를 형성했다. 나아가 2회는 경천대, 화룡포, 하회마을, 그리고 삼강주막 등을 탐방하고 환경정화 활동도 포함하여 어느 프로그램보다 의미있는 활동을 했다. 또한 정선아리랑 배우기, 전통다도 문화에 대한 학습 및 체험하기도 했다. 이어 자신의 다짐을 담은 타임캡슐을 제작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2회 때는 본지 1555호(2010년 6월 3일자)에서 다뤘듯이 선발과정에 있어 체력테스트를 진행해 많은 학생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휴전선 155마일 행진=이러한 문제는 3회 때 공개추첨이라는 제도로 변경됐다. 이번 국토순례대장정은 다른 때와 달리 분단된 조국의 휴전선 155마일을 직접 걷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155명 모집에 887명의 학생이 지원해 국토순례대장정의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2회 때의 국토순례대장정과 달리 3회 때는 6월 24일부터 7월 7일까지 13박 14일로 진행됐으며, 휴전선 155마일의 순례와 연계해 155명의 대원을 선발해 13조로 구성됐다. 경로는 고성에 시작해 인제, 양구, 화천, 철원, 연천 그리고 파주로 이어지게 짜여졌다. 프로그램 취지에 맞게 북한군이 남침을 위해 판 제4땅굴 체험과 평화의 댐을 방문, 그리고 평화의 종 울리기, 새터민의 강의 듣기 등이 포함되어 분단현실을 깨달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참가를 원하는 학생에 비해 프로그램에서 수용 가능한 인원이 제한적이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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