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쥐」 이은
「미술관의 쥐」 이은
  • 강보람 준기자 기자
  • 승인 2011.05.1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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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뜨거웠던 신정아 논란이 잠시 사그러드는가 싶더니 최근 신정아가 출소하면서 새로 내놓은 책으로 인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아직 사회에 나온 지 얼마되지 않은 우리들에게 미술관은 마냥 아름답고 환상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신정아 일을 계기로 마냥 순수하게만 보았던 미술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깨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황홀한 그림도 사실은 높으신 분들의 뒷돈으로 이미 더럽혀진 게 아닐까? 라는 걷잡을 수 없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어른들의 미술에 다가가기도 전에 이러한 끔찍한 사실들을 알아버리니 어른들의 예술이 마냥 무섭고 타락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우리들의 두려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번 잉여와 책은 <미술관의 쥐>로 선정했다.


이 책은‘그림 추리’를 활용한 미술 전문가의 신감각 추리소설이다. 자살과 가짜 그림 등을 둘러싼 의문들을 파헤쳐가며 미술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정석적인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미술의 진정한 의미는 정석적이지 않다.

◆돈과 예술로=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석적으로 예술을 낭만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바깥세상은 온갖 때가 다 끼여 비열하고, 험악해도, 예술의 영역은 항상 깨끗하고 숭고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글 내내 예술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저 어딘가의 구름위에서 신선놀음이나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렇게 미화된 예술계가 사실은 다른 세계보다 더 험악한 곳이라는 것이다. 사실 예술가들은 예술의 특성상 고대시대부터 후원을 받아와야만 했다. 비싼 재료부터 막대한 지원과 탄탄한 인력까지 많은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누구보다 돈이라는 것에 민감하고 그에 얽힌 숨은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거친 세계 속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살아 온 예술이라서 오늘날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순수의 회복이 예술=때론 예술도 때가 묻을 수 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도 하듯이 예술도 그 넓은 스케일만큼 어느 한 쪽에서는 다양한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그런 거친 마음이 들었을지라도 처음 예술을 시작할 때 가졌던 그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 사실을 끝까지 외면한 소설 속 인물 변재범과 같은 비극은 만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순수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에는 양지도 있지만 음지도 있다. 이제 어른의 예술세계에 들어가야 하는 우리들은 어릴 때처럼 예술의 좋은 것만 보는 편향적 시각이 아닌 예술의 양지와 음지를 함께 보는 양방향적인 시각으로 예술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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