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독서생활에 비추어본 현대인의 문제점
퇴계 독서생활에 비추어본 현대인의 문제점
  • 편집국
  • 승인 2011.05.0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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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주된 독서 대상은 경전이다. 경전이 성현의 어록이기
때문이 아니라 천과 인과 물을 하나로 여기는 물아일체 혹은 천
인합일 사상을 담았기 때문에 독서의 대상으로 삼았다. 독서가
‘도덕적 실천을 전제로 한 물아일체 ·천인합일의 사상 파악하
기’라는 점에서, 도덕적 실천윤리의 확인이 목적이라 정의할 수
있다. 퇴계의 독서생활과 현대인의 독서생활은 많이 달라 보인
다.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는 퇴계의 독서생활과는 달리, 현대인
은 대부분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독서생활을 한다. 오늘
날은 퇴계 당대와 다르다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고 말
것인가?

퇴계 당대와 오늘날은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 사회 변화의 속
도가 다르고, 정보의 양도 다르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측면도
있다.‘인격 형성과 심신 수양’이 바로 그것이다. 정서적 목적이
나 실용적 목적이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인격 형성과 심신 수양
의 목적이 단지 구색용으로만 그치지는 않는다. 중고등학교 국
어과의 독서교육 목표란에서도 명시되어 있고, 대학교 독서 전
공계열의 학습목표란에서도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 그 증거가
된다. 정규교육기관에서 인격 형성과 심신 수양의 목적을 제시
하는 데는 이런 독서의 목적이 인간의 삶에 필수불가결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목적을 구체화하려면 목적에 걸맞은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
방법을 마련하느라고 고심하기보다는 기존에 갖추어진 독서법
을 수용한다면 품을 덜 들일 수도 있다. 한 ·중 성리학자들의 독
서법은 현대적 관점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할 만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가운데서 퇴계 독서법은 특히 주목을 요한다. 경의(敬
義)사상에 입각해서 앞 시대의 독서이론을 검토하고 실천적인
요목까지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퇴계 독서법을 수용한다면
분명히 바람직한 결과에 이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대부분의 독서인들은 퇴계 독서법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고, 설
사 인식한다고 해도 세세하게 알려고 하지 않는다. 왜 세세하게
알려고 하지 않는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퇴계 독서법의 향유 계층이 제한적이라고 여긴다는 점
이다. 퇴계 독서법이라 하면 특정 문인만을 겨냥했다고 인식하
는 경향이 있다. 퇴계가 특정 문인을 훈도하는 과정에서 독서법
을 내놓았다고 해서 독서법의 향유 계층이 개인뿐이라 할 수는
없다. 정황이 어떻든 간에 보편성을 지닌다면 그 독서법은 여러
계층에게 열려 있다고 해야 옳다.

둘째, 퇴계 독서법의 내용이 비실용적이라고 여긴다는 점이
다. 퇴계를 고답적인 인물로 판단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정통
성리학자이기 때문에 이기 ·심성론과 같은 고답적인 이론체계를
표출하기도 하나, 생활인이기 때문에 존심 ·양성과 같은 실용적
인 수양론을 표출한다고 보아야 옳다. 독서법은 퇴계의 양면성
을 무엇보다 잘 보여준다. 독서의 이유 ·조건 ·자세 ·방법 ·병통 ·
치료법이라는 실용적인 성격과 경전의 이론체계라는 고답적인
성격이 서로 맞물린 데서 이런 점이 드러난다. 만약 독서법의 실
용적인 성격을 간파하지 못하면 독서법에 대한 이해는 절름발이
나 다를 바 없게 된다.

셋째, 퇴계 독서법이 지닌 형식과 내용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흔히들 퇴계가 형식과 내용을 별개로 다룬
다고 속단하는 경향이 있다. 독서법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가령 독서의 자세를 다루면 이에 합당한 내용이 담기고,
독서의 방법을 다루면 이에 합당한 내용이 담긴다. 퇴계야말로
특정 형식에는 특정 내용이 필요하고 특정 내용에는 특정 형식
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철저히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형
식과 내용의 관계론에 대한 퇴계의 인식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형식과 내용을 별개로 파악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첫째, 둘째, 셋째를 살펴보니, 퇴계 독서법에 대한 무지가 오
해를 초래한다. 특정 향유 계층을 겨냥한다고 여기고, 비실용적
인 내용을 담았다고 여기고,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긴밀하지 않
다고 여기는 점이 오해의 내용이다. 오해의 내용을 뒤집으면 곧
퇴계 독서법의 실상이 된다. 실상이란 향유 계층이 열려 있고,
실용적인 수양론을 지향하고, 형식과 내용의 관계가 아주 긴밀
하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이렇게 보니, 퇴계 독서법에 대한 오해
는 실상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오해는 오해를 낳
게 마련이다. 퇴계 독서법을 오해하는 사람은 고전 독서법에 대
해서도 오해한다고 보아야 한다. 오해가 오해를 낳으면서 덩치
가 더 커진다고 볼 때, 하나의 오해가 더 큰 오해를 확대재생산
한다는 언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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