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성과급제 시행을 앞두고-성과, 성과급, 교육
교원성과급제 시행을 앞두고-성과, 성과급, 교육
  • 이승렬 교수회 부의장(영어영문학과)
  • 승인 2011.03.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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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교에서도 교원성과급제가 시행된다. 경쟁과 효율이 지상(至上)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우리 대학교에도 투영된 것이다. 대학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것일까? 대학의 비전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되어버렸다. 대학은 경쟁력이나 효율성과는 다른 대안적 가치에 대한 비전을 꿈꾸고 그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현실적 방안과 기술을 익히는 아주 특별한 조직이기를 포기하였다.
교원성과급제는 문자 그대로 일터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 특별히 보수를 책정해 기본급 이외에 별도의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교원성과급제가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는 제도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가 만족되어야 한다. 그것은 조직 구성원들의 성과가 산술적 수치로 환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 교수들의 업적이나 성과를 순수하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체 직원들의 업적이나 성과와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우선 대학의 교원들은 저마다 하는 일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전공도 다르고 개별 교수들이 수행하는 교육과 연구의 바탕에 깔려있는 철학과 정신도 다르다. 교수들이 생산해내는 논문의 편수와 교육 행위에 대한 몇 개의 외형적 지표로써 교수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보수를 차등 지급하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대학의 정신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교원성과급제를 강행하겠다고 한다면 또 하나의 중요한 전제를 만족시켜야 한다. 그것은 교수들의 외형적 성과를 보상해주기 위한 별도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업체의 경우는 영업과 판매 실적의 향상이 곧바로 성과급을 위한 재원 확보와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원성과급제라고 하는 제도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영리 단체가 아니다. 교원성과급제 시행을 위한 재원은 대학의 재정을 뒷받침해주는 재단의 전입금이나 국가의 교육 지원금으로부터 마련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 대학교의 형편을 살펴보면, 교원성과급제 시행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방안이 무엇인지 매우 불분명하다. 재단이나 국가로부터 우리대학의 교원성과급제를 뒷받침해줄만한 재원을 확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짐작해볼 수 있는 교원성과급제는 제로섬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말하자면, 논문을 많이 쓴 교수가 논문을 조금 쓴 교수의 봉급의 일부를 가져가는 방식이 그것이다. 우리 대학교의 교원성과급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한경쟁 시스템을 구축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학의 정신이 죽고 조직으로서의 활력이 크게 떨어지면, 우리는 그런 대학을 발전하는 대학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원성과급제의 시행과 더불어 가장 우려되는 바는 교원들이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이라는 인간의 활동은 결코 외형적 성과를 올리기 위한 점수 따기 행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제도경제학자 토르스타인 베블런은 일찍이 20세기 초, 미국 대학의 교원성과급제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교원성과급제는 필연적으로 교육의 관료화를 낳고 학생들에게 세상의 근본을 가르쳐야 하는 교육 활동을 크게 훼손시킬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의 예측은 그대로 적중하여, 오늘날 미국 대학교육의 퇴보는 교원성과급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학자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의 제도를 따라가는 것이 곧바로 선진적인 것이라는 믿음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교원성과급제를 홍보하는 본부의 안내책자에는 교원성과급제가 선진형 인사 및 교육 제도 확립을 위해서라고 적혀있었다.) 정식 재단을 맞아들인 지금, 우리 대학교가 진정 명문대학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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