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다치거나 쫓겨나거나
죽거나 다치거나 쫓겨나거나
  • 김헌주 소장(경산이주노동자센터)
  • 승인 2010.12.03 1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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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만든다면 이런 제목이 붙지 않을까. 최근 서울 구로 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베트남 노동자가 단속을 피해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두개골이 파열돼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비록 목숨을 건진다고 하더라도 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중상을 입는다. 이도 저도 아니고 무사히 살아남아도 결국 보호소에 수용됐다가 강제로 추방당하기 일쑤다. 단순한 행정 사범인 미등록 노동자를 체포, 구금하고 추방하는 것은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고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인간적이고 반인권적인 공권력 남용이다.

미등록 이주자에 대한 탄압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일반화하고 노동자들 간에 정규직,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차별의 구조를 고착화해 이 땅의 빈익빈 부익부 구조를 더욱 더 공고히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등록 이주자를 끊임없이 협박하고 잡아들여 강제 추방함으로써 일상적인 불안감을 조장하고, 이 때문에 자신의 근로조건과 관련된 정상적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자 하는 영세 자본가들은 값싼 임금 때문에 이들을 고용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착취의 먹이사슬을 이주노동자들에게 돌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착취의 배후에 ‘고용허가제’가 있다. 고용허가제는 노동자의 천부적 권리인 직업 선택의 자유를 법이라는 이름으로 가로막고 있다. 마지못해 허락한 사업장 이전의 기회도 3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세 번의 기회마저도 사장이 허락해야 옮길 수 있고,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공장에서 억지로 일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불법으로 낙인 찍혀 강제 추방을 당해야 한다. 결국 고용허가제는 정당성 없는 법이 힘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는, 법의 이름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말한다. “Nobody is illegal. But system is illegal.”(불법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제도가 불법이다.) 정당성을 상실한 고용허가제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고, 다시 이들을 강제 추방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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