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_ 이계섭(대전대 문예창작3)
누군가 이 밤을 느리게 끌고 가고 있다. 빈병이나 박스로 거리를 뒹굴어 다니는, 우리의 버려진 꿈들이 한 가득이다.주홍빛 가로등 마다 느리게 흘러가던 어둠이 정차한다. 신호대기중인 가로등 밑으로 여기저기 해진 사연들이 모여든다. 가만히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어둠 속에 이슬이 비치기도 한다. 가로등 사이사이 오가지도 못하는 밤은 늘 정체중이다.
밤잠이 없는 할머니는 산책중이라는데 느리게 리어카를 끌고 나간 새벽거리, 불 꺼진 가로등 곁을 지나던 할머니가 리어카를 새워두고, 내 머리 맡에서 들려줄 이야기들을 수거한다. 요 놈 요 놈 자주 내 아랫도리를 만지던 그 다정한 손으로, 버려진 이야기들을 쓰다듬어주다가, 고양이며 강아지며 하나씩 집으로 입양하던 마음으로 리어카에 이야기들을 쌓아 올린다. 그 중에는 오래전 할머니가 잊고 있던 첫사랑이나 할아버지 이야기가 하나씩 실려 있을지 모른다. 잡동사니로 북적거리는 새벽 거리 지나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내 꿈처럼 할머니의 리어카도 만선이 된다. 수평선 너머 귀향하는 어선들이 파도를 끌고 부두에 정착하듯이 할머니가 물결 지는 어둠을 끌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새벽 거리가 푸른 신호로 물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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