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의 정신적 사랑, 이영도
청마의 정신적 사랑, 이영도
  • 이수정 준기자
  • 승인 2010.11.1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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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쉽고 빠르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64년 전, 정인에게 20년 동안 5천통이 넘는 편지를 내며 사랑을 나눈 시인이 있다. 이 애절하고 진실된 사랑 이야기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한번 쯤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청마(靑馬) 유치환과 정운(丁芸) 이영도이다. 그녀는 이호우 시조 시인의 여동생이며 「청저집」으로 유명한 여류 시조시인이자 수필가이다. 이들의 우정에 가까운 러브스토리는 아주 유명하다.

유치환 시인은 통영여자중학교에서 가사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던 이영도 시인을 처음 보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한 후 딸과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통영여자중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이들은 통영여자중학교에서 첫 만남 이후 약 20년간 5천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다음의 시는 유치환 시인과 이영도 시인의 시이다.

그리움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끄덕도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탑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만날 수 있어도 함께 할 수 없는 뭍과 파도의 운명을 그들도 알았을까. 이렇듯 유치환 시인은 서로 만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랑을 나누면서 ‘열애를 거쳐서 영혼의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말을 통해 그가 문학적 동반자인 이영도 시인과 정신적 사랑을 나누면서 영환의 구원을 얻으려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유치환 시인이 자신의 내면적 사색을 이끌어 내, 그것을 창작함으로써 얻는 자기승화라고도 볼 수 있다.

유치환 시인이 부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이영도는 그로부터 받은 편지 중에서 2백 여 통을 간추려서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서간집으로 묶어 내게 된다.

1950년대까지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시국과 사상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6.25가 일어나면서 그녀는 유치환 시인의 안전을 우려하여 불에 태웠다. 그때 태운 편지는 사과 상자로 3상자 가량이며 책으로 나온 부분은 50년대 이후에 받은 편지 중에서 선정한 것이다.

이 책은 발간 후 곧바로 베스트셀러로 선정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사랑에 관심을 가졌다. 많은 관심들 중에는 ‘플라토닉한 사랑이다’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은 불륜이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책을 발간한 후 “그때의 편지야말로 그대로 시요, 문학이었다”고 말한 이영도 시인처럼 이 책이 이들의 사랑이 단순한 사랑의 편지로 기억하기보다는 청마 유치환 시인의 내면적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문학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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