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삶의 예술
‘우리’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삶의 예술
  • 김지식(영어영문3)
  • 승인 2010.11.0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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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영문학과의 스물아홉 번째 영어연극인 뮤지컬 ‘올리버’가 10월 8일과 9일 3회 공연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1981년에 시작돼 29회로 이어진 영어영문학과의 영어연극이 올해도 많은 선·후배님들과 동기들 그리고 교수님들의 관심 속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학생 연극이라는 것이 그렇듯 성공적인 공연 뒤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다.

필자가 연출을 맡은 올해 영어연극은 개인적으로 무척 욕심이 났다. 하지만 처음 하는 연극 연출인데다 26명이나 되는 배우들을 하나로 모으고 뮤지컬을 천마아트센터 그랜드홀에서 공연하는 것을 내 욕심은 허락했지만 능력은 그렇지 못했다. 6월 말부터 시작된 연극 연습은 하루 12시간의 강행군이었고 초짜 연출 아래서 배우들은 갈팡질팡하기 일쑤였다. 커다란 무대를 채우기 위해서는 많은 무대 세트와 소품이 필요했지만 그것을 만들기에는 사람도, 돈도, 경험도 매우 부족했다.

어느덧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예정된 공연은 점점 가까워져 오는데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초조한 마음에 배우들에게 버럭 화를 내기도 했고, 스태프들을 닦달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늦어지는 무대 세트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 연습이 끝나면 새벽까지 남아 무대를 만들었지만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다. 욕심과 능력의 안드로메다 간극 속에서 부족함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의 부족함을 채워 준 것은 ‘우리’라는 이름이었다. 배우, 기획, 조명팀, 무대팀, 소품팀, 음향팀 모두 다 자기 시간을 기꺼이 포기하고 ‘우리’라는 이름 아래에서 부족한 것들을 서로 채워나갔다. 톱질을 하는 서툰 손놀림이 너무 고마웠고 나날이 발전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뭔가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 공연 당일이 됐고 뮤지컬 ‘올리버’의 막이 올랐다.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연극과 공연을 봐왔지만 막이 오를 때부터 눈물이 났던 공연은 처음이었다. 혼자 꿈꿔왔던 그림들이 무대 위에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공연되고 있었다. 무대 위에 보이는 모습들과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다.

연극은 삶과 가장 가까운 예술이다. 누군가의 삶이 무대 위에 올라간다. 그들은 태어나고, 죽고, 울고, 웃는다. 하지만 무대 위의 배우들만이 연극이 삶에 가장 가까운 예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연습 중 점심시간이 되면 다 같이 둘러앉아 까먹는 도시락, 춤 연습을 하느라 새카매진 발바닥, 대사를 잊어먹는 실수와 연습에 늦을 때 내는 벌금, 서툰 망치질과 옷에 묻은 페인트 자국이 연극이 삶에 가장 가까운 예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2시간여 동안 다른 사람의 삶을 연기하기 위해 각자의 시간을 기꺼이 포기했던 ‘우리’에게 내 삶이라는 연극에 있어서 가장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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