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단지 재미로만 볼 수 없는 까닭
드라마를 단지 재미로만 볼 수 없는 까닭
  • 임기덕 교육부장
  • 승인 2010.11.0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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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대물’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매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함과 동시에 연일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 한 마디와 몸짓 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여러 언론 매체의 보도를 통해 비춰지는 정치권의 반응 역시 뜨겁다. 하지만 그 양상이 일반인들과는 조금 다르다. 뜨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눈치라고 한다.

드라마 초반 야권에서는 주인공이 훗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설정에서 여권의 유력한 예비 대권 주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드라마 속 ‘민우당’에 대해 특정 정당의 현재 당명과 예전 당명을 조합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여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단다. 드라마 속 집권당 대표가 측근들로부터 받은 고가의 미술품을 화랑에 팔고, 그 대금을 조세 피난처인 바하마 군도의 계좌로 받음으로써 거액의 세금을 탈루하며 불법 정치자금을 만드는 모습을 보인 후였다. 이밖에도 국회의원의 구두를 혀로 핥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드라마 ‘대물’은 우리나라 현실 정치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주인공 서혜림은 정치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 문외한’이지만 자신의 고향에서 열리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한다. 하지만 선거 유세에서부터 온갖 곤경을 겪는다. 자금과 조직이 우세한 상대 후보 진영은 정책과 공약, 비전 없이 비방과 흑색선전을 통해 선거 국면을 이끌어간다.

어렵사리 국회의원이 됐지만 당 지도부 중심의 상명하복 식의 의사 결정으로 인해 개인의 정치적 소신이 허용되지 않는다. 여당의 이름을 달고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지도부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만 한다.

그리고 이른바 핵심 법안 처리를 놓고 벌이는 여야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 야당의 국회 본회의장 점거와 여당의 돌격대와 쇠망치질, 의장석과 의사봉을 차지하기 위한 패싸움, 날치기 투표를 통한 법안 통과, 여기에 뇌물 수수와 불법 정치자금 조성까지 정치권이 습관적으로 일으키는 반민주적 레퍼토리가 그대로 묘사됐다. 다시 말해 드라마에서 비춰진 정치와 정치인들의 모습은 현실 못지않은 ‘막장’ 그 자체였다. 현실을 반영한 것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질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실에서는 크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친 서민’이니 ‘공정 사회 구현’이니 하는 단순한 구호 놀음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국면 한가운데에 큰 도돌이표가 그려져 있어 앞으로도 이러한 행태가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놓여진 ‘불편한 진실’의 한 단면이다. 드라마를 그저 재미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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