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위한 도서관은 없다
학생을 위한 도서관은 없다
  • 박진규(정치외교4)
  • 승인 2010.10.0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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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솟은 22층짜리 중앙도서관은 36년간 대학과 지역의 상징이었다.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좌석을 배정받고, 디지털화된 자료를 활용해 공부하고 있었다.” 한 신문(중앙일보 2010년 5월 31일자)에서 그린 우리 대학교 중앙도서관(중도)의 풍경이다. 기사에서 그리는 것처럼 중도는 주변 단층 건물들과 논밭들 사이에 ‘우뚝 솟은’ 우리 학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하지만 이 건물이 학생들을 위한 건물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중도의 20여 개 층 가운데 학생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겨우 서너 개 층 정도이다. 나머지 층은 교원들의 공간이다. 2만 학우의 10%도 수용하지 못하는 중도의 좌석에 비한다면 교원들이 차지하는 나머지 층들은 사치스럽다. 몇 개 되지 않는 자리를 맡기 위해 지친 얼굴들로 길게 늘어선 줄은 ‘우뚝 솟은’ 외향만큼이나 우리 대학교의 서글픈 내면을 상징한다.

중도의 서비스 역시 학생을 고려하지 않는다. 도서 예약제를 떠올려보자. 예약된 책의 반납이 늦어지는 경우 도서관 측에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연체된 지 1주일이 지나서야 고작 한다는 것이 예약자에게 연체자의 이름, 학번,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일이다. 도서관 측이 연체자의 신상을 예약자에게 통보하는 것은 이용자 간에 알아서 하라는 것인데 이는 그들 본연의 임무를 떠넘기는 것이다.

2~3층 자료실의 밤 풍경을 그려보자. 개관시간이 오후 10시까지임에도 불구하고, 폐관 10~20분 전부터 행정 인턴들에게 퇴장을 요구받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리면 소란스레 책상을 쓸며 퇴장을 재촉하고, 전기를 내려 깜깜한 공간에서 책장을 짚으며 나오게 만들기도 한다. 개관시간이 10시까지인데 그들은 자신의 퇴근시간이 10시라 착각하고 있나보다.

지난 학기 시험기간에는 새로운 소식 하나가 중도 누리집을 장식했다. “자료실 오전 7시 조기 개관을 이번 기말고사 기간부터 실시하지 않겠다. 단과대학별로 강의실을 학습공간으로 개방하니 적극 이용하시기 바란다”는, 단 두 문장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시험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개관 시간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도 모자라 어떤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그저 따르라는 것은 학생들의 권익 따위는 안중에 없는 도서관 측의 의식수준을 공언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권익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 그들도 자신들의 권익만큼은 극대화하려 한다. 적어도 수년째, 방학 중 자료실의 개관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단 6시간뿐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시간이 도서관의 이용자 수나 패턴 등 도서관의 원활한 운영과 관계되는 사항에 대한 고려 없이 교직원들의 방학 중 단축근무에 따라 정해진 시간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새로운 소식을 하나 들었다. 교수들이 자료 대출을 요청할 경우, 연구실까지 책을 배달해 준다는 것이었다. 도서관 측이 그간 자신들의 권리만을 주장할 뿐, 이용자들의 권리나 처지는 결코 고려하지 않아 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권익 증진을 위한 시도는 여전히 찾을 수 없다. 정녕 학생들을 위한 도서관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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