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를 기다리며
장터를 기다리며
  • 박주현 취재부장
  • 승인 2010.10.0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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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가까이 이어진 추석 연휴기간, 나는 엉덩이가 달싹거려 어디든 가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젊음, 예술을 떠올리며 홍대 앞을 찾았다. 하지만 그 거리가 나에게는 불편했다. 상점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노랫소리, 또 그곳을 들락날락 하는 많은 사람들. 넘실대는 물결이 ‘나를 사봐’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내가 젊음을 느끼기 위해 홍대가 아니라 홍대 앞을 갔던 것처럼 그 곳에는 대학생이 아니라 소비를 원하는 젊은이로 가득 차 있었다.

자본주의 숲 한가운데, 홍대 앞 놀이터에는 토요일마다 장이 선다. 그 옛날, 동네 읍내마다 장이 서면 장돌뱅이와 구경꾼이 만나 그간 살아온 얘기를 떠들어 댔던 것처럼 그곳은 예술가와 예술을 찾는 사람이 만나는 자리다. 이 장터의 물건들은 모두 기성품이 아닌 독창적인 디자인을 가진 예술품이다. 일종의 갤러리인 것이다. 이는 플리마켓(fleamarket, 중고품 벼룩시장)이 아닌 프리마켓(Freemarket)인 이유이다.

홍대 앞 예술시장이라 불리우는 프리마켓은 문화 생산과 소비의 새로운 대안으로 내세운다는 거창한 포부아래 일상예술창작센터 주도 하에 만들어졌다. 예술을 팔고자 하는 자와 이를 기다리는 사람의 만남으로 무려 8년 째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홍대 앞 놀이터를 예술공간으로 승격 시켜 놀이터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까지 시장이 확산된 상태다.

작고 반짝이는 것이 너무 예뻐 눈이 휘둥그레졌을 때, 옆에 상인, 아니 작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나와 말하기를 원하는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원석에 은이 휘감고 있는 브로치를 가리키며 이것이 무엇으로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까만 원석이 나비의 날개같이 보여 나비같다고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큰 돌을 이고 있는 여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작가는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맞장구치며 큰 바위를 둘러싸며 자라난 소나무를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덧붙여 싸게 해줄 테니 사가라며 장사꾼의 미덕도 잊지 않았다. 그만한 돈이 수중에 없던 나는 그것을 가질 수 없었지만 안타깝지 않았다. 대신 그것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사가길 작가와 같이 기도했다.

 그곳의 작가들은 소비자, 아니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마추어 밴드들이 공연할 수 있도록 홍대 앞 놀이터 가장자리에 무대가 마련돼 있다. 한 가수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 말을 꺼냈다. “집에 나서는 길에 본 하늘이 너무 예뻐서 여러분에게도 하늘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여기는 구름이 있어서 안보이네요.” 사람들은 웃었고 몇몇 이들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갠 하늘을 전해 주고 싶은 가수의 마음만 전달됐다.

사고픈 욕망만 남아 있는 대학로는 천박하다. 전시된 예술품만 덩그러니 놓인 중앙도서관 내 전시관은 외롭다. 우리 학교 앞이 소비자가 넘실대는 거대 상권이 아닌 예술을 찾는 사람으로 넘실대는 장터로 거듭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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