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입맛대로 대학을 쥐락펴락?
언론사 입맛대로 대학을 쥐락펴락?
  • 이광우 기자
  • 승인 2010.10.06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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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서열화 부르는 도 넘은 언론사 대학평가

“A대, XX일보 대학평가에서 전국 OO위 달성!!”
매년 입시철 신입생 모집이나 대학 홍보용 책자 또는 신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학교 홍보 광고의 예시이다. 언론사의 평가 결과라는 생각에 큰 의구심 없이 받아들이기 쉬운 대학평가, 과연 마음 놓고 믿을 수 있을까? 올해 발표된 우리나라 언론사의 대학평가 자료를 조사한 결과 같은 시기, 같은 대학을 평가한 것임에도 점수가 천차만별인 것으로 드러났다. 더군다나 이러한 대학평가는 독자나 일반인에게 자연스럽게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위) 부문별 평가를 통해 대학 서열화 논란을 빚은 경향신문 대학평가
(아래) 올해 발표된 대학평가의 현황 및 특징  / 이광우 기자


◆갈수록 퍼져 나가는 대학평가, 대학서열화의 심화 부추겨=그렇다면 우리나라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언제부터 실시된 것일까? 1994년 중앙일보가 대학 간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대학 선택의 기준을 제공하자는 목적으로 시행한 것이 시초였다. 당시 대학교의 재정자료, 현황 등은 일반인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당시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대학평가의 결과로 나온 순위를 여러 대학교가 홍보에 사용하는 등 대학평가 분야에서 중앙일보가 독보적인 행진을 이어나가자 지난 2009년 조선일보가 또 다른 대학평가를 실시했다. 조선일보가 영국의 대학평가 전문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와 협력을 맺고 아시아 대학평가를 실시한 것이다. 대상 대학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전역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중앙일보의 대학평가와 큰 차이가 없었다. 곧이어 올해, 경향신문이 ‘2010 대학지속가능지수’를 발표했다. 사실상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 대다수가 대학평가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특히 경향신문의 경우 대학평가를 발표하면서 ‘우리는 왜 대학평가를 하는가’라는 일종의 ‘해명기사’를 지면에 담았다. 기사에서 경향신문은 “순위로 발표하지만 특정한 철학에 입각한 대학교육에 관한 의견이다”며 대학 서열화 우려에 대해 해명했다. 이에 따라 경향신문이 발표한 대학평가는 기존 언론사의 것과는 겉보기엔 달라 보였다.

하지만 경향신문의 대학평가는 오히려 기존의 중앙일보나 조선일보보다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전국 1백49개 대학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학평가에서, 사전조사를 통해 30개 대학을 우선적으로 선정해 따로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교육(60%), 연구(40%) 부문의 성과를 기준으로 상위 30개 대학을 고른 경향신문은 이 대학들에 대해 교육, 연구, 진로, 소통, 편의 분야로 나눠 평가했다. 사실상 교육이나 연구 분야 특성화 대학이 아니거나 지방 소재 사립대일 경우에는 이 단계에서 이미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경향신문은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실수를 범했다. 첫 번째는 위에서 언급하였던 대로 조사 단계에서 손수 서열화를 한 뒤 평가를 진행한 것이다. 두 번째는 상위 30개 대학의 각 분야별 순위를 매긴 것이다. 가시적으로는 종합순위를 발표하지 않아 서열화를 막으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지면을 통해 경향신문은 객관화할 수 없는 ‘소통’마저 순위를 매겨 오히려 대학 서열화에 ‘보탬’을 했다.(사진 참조)

더군다나 경향신문은 분석 과정에서 ‘상위 30개 대학’과 나머지 대학의 평가방법마저 차별을 뒀다. 내부에서 규정한 상위권과 중·하위권 대학 사이의 선에 따라 완전히 다른 평가를 실시했다. 이들은 30개 대학의 경우 재학생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나 나머지 1백19개 대학은 실시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 1백19개 대학은 각 분야별 점수를 합산해 종합순위를 보도했다.

◆언론사마다 제각각인 분석 지표와 반영 비율=이처럼 대학평가가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에 더해 각 언론사의 분석 지표나 반영비율이 다른 것도 큰 문제로 볼 수 있다. 올해 발표된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의 분석 지표와 반영비율은 모두 제각각으로, 어느 언론사가 평가했는가에 따라 점수가 확연히 다르게 나오는 것이다. 애초 대학평가 도입의 취지였던 ‘대학 간 경쟁 유발 및 학생·학부모 정보 제공’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혼란만 가중시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동일한 지표를 두고도 반영비율이 다른 경우가 즐비하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경우 부문지표의 정의는 약간 상이하나 세부지표는 14개가 동일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세부지표가 동일했던 교육 관련 세부지표의 경우 중앙일보는 전체지표 중 57.1%를 차지했고 경향신문은 37.5%를 차지했다. 또한 교수연구 부분은 각각 32.9%와 25%의 비중을 보였다.(표 참조) 하지만 경향신문이 평가 방법이나 기준을 발표하지 않아 각 세부지표별 구체적인 가중치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이 같은 분석지표, 가중치와 관련된 문제는 특히 우리나라 언론사에서 부각된다. 앞서 설명한 경향신문의 ‘상위 30개 대학’ 선정의 경우 연구와 교육만으로 선정했기 때문에 포항공과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이 1,2등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연구중심대학으로 출발했으며 학생 수도 종합대학교에 비해 적을 뿐더러 국가적인 지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하므로 평가에 유리한 것이다.

또한 지표가 불필요하게 많은 점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QS의 연구에 따르므로 세부지표가 8개에 불과했지만 중앙일보의 경우 32개, 경향신문의 경우 67개에 달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많은 지표를 조사하기 때문에 놓칠 수 있는 부문까지 포함하므로 큰 문제가 없다고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학들의 편파성 논란이나 개선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다 보니 무분별하게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민간기관 또는 언론사가 실시하는 대학평가는 정확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조선일보와 함께 매년 아시아 대학평가를 실시하는 QS는 이미 세계대학평가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전문성을 문제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아시아 대학평가에 사용된 일부 세부지표가 엉터리로 드러나 한동안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우리 대학교와 강원대, 충북대의 2003년부터 2007년까지의 간 교수 논문 수가 제대로 입력되지 않고 평가된 것이다. 당시 QS는 우리 대학교의 영문 명칭을 오인해 해당 기간 동안 단 1건의 논문이 작성된 것으로 평가했고, 항의가 이어지자 곧바로 실수를 시인했다. 하지만 평가 점수나 순위는 변경되지 않은 채 관련 보고서 일부분에 정정 문구를 삽입하고 마무리 지었다. 

◆수도권 인기 대학 몰아주기 식인 ‘평판도’ 조사=그러나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표 중 ‘평판도’ 분야이다. 이 부문지표에 대해서 우리 대학교 이재원 기획처장(기계공학부)은 “대부분의 지방 대학교는 다른 분야에서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도 평판도 분야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처장은 “평판도 분야는 사실상 수도권 주요 대학이 항상 높은 순위에 자리 잡을 수 있는 하나의 ‘보험’이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대기업이나 정부부처 등의 인사담당자 7백50명에게 ‘신입사원으로 뽑고 싶은 대학’을 묻는 지표가 존재한다. 또한 ‘기부하고 싶은 대학’등의 평판도 지표 5개를 교육계 등의 인사들에게 묻기도 했다. 인지도가 높은 대학 또는 수도권에 속한 대학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지표인 것이다. 이 같은 지표가 전체에서 20%나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대학교의 경우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모든 평판도 지표가 전체 순위인 24위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국가 및 지역사회 기여’ 지표는 작년에 비해 11위 하락한 상황이다. 우리 대학교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설문조사로만 진행하다 보니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우리 대학교가 가령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다른 지표의 합계로는 20위권 안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평판도가 낮아 하락하는 것이다. 실제 이번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를 살펴보았을 때, 우리 대학교보다 상위권에 속한 대학교 중 평판도를 제외한 부문지표 성적이 가장 비슷한 대학교는 중앙대였다.

중앙대의 경우 국제화, 교수연구, 교육여건 및 재정 분야에서 5점 정도의 차이가 날 뿐이었으나 평판도 부분이 24점 이상 높아 12위에 자리했다. 평판도 지표만으로 10위 이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세부지표인 ‘입학을추천하고 싶은 대학’에서 우리 대학교는 35위인 반면 중앙대는 7위를 기록했다. 구체적인 자료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이처럼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대학평가의 신뢰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 8개 대학 교수 협의체 연합회, 언론사의 대학평가 비판=이처럼 수많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대해 결국 지난달 8일, 비판의 목소리가 정식으로 터져 나왔다. 서울지역 8개 대학 교수 협의체 연합회가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성명서에는 언론사가 앞다퉈 대학평가를 실시하는 것이 순수한 목적보다는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한 수익 창출에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 이번 경향신문의 대학평가 당시 전국기획처장협의회 및 전국대학평가협의회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무분별한 대학평가의 양산과 목적 전치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성명서는 이어 “언론사의 평가기준을 모두 쫓아가다 보면 대학 본연의 사명과 발전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올 것”이라며 우려했다.

이에 따라 연합회는 언론사가 대학의 변화와 발전을 견인해야 한다는 발상을 버리고 정부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학평가 정책을 수립해 수익사업과 무관한 기관이 이를 주도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연합회 대표 박진배 연세대 교수평의회 의장(전기전자공학부)은 “언론사 대학평가의 가장 큰 문제점이 공정성과 전문성의 결여”라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대학 정보 공시’가 언론사 대학평가의 영향력 낮출까?=현재 언론사의 대학평가 이외의 대학 정보 공개창구로 대학알리미와 대학 자체평가 보고서가 있다. 대학알리미는 지난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차원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학술 및 정책연구를 진흥하며 교육행정의 효율성 및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이에 따라 전국의 모든 대학은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대학알리미 사이트는 주요정보와 상세정보로 구분되어 있는데, 주요정보는 해당연도 정보를 간략하게 알려주며 상세정보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일 전국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취업률 등을 분석해 공개한 상황이다. 어떤 대학의 운영 상태나 현황을 알아보고자 한다면 대학알리미를 통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알리미의 경우 해당 대학이 전국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굳이 순위를 매기지 않더라도 전국 평균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기능은 필요하지만 아직 이런 기능은 도입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처장은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대안으로 사용할만한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부터 전국 대학교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등록금, 취업률, 교육 및 연구현황, 시설 등에 대하여 자체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각 대학 홈페이지와 대학알리미 사이트를 통해 공시하고 있다. 현재 대학들은 2년에 1회 이상 학교 운영 전반을 종합 분석한 결과를 공시하도록 돼 있다. 대학 자체평가 보고서는 그 도입 취지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지만 구체적인 평가 방식에 있어서는 부정적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평가항목과 기준, 절차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교의 경우 자체평가연구위원회와 자체평가기획자문위원회를 꾸려 7개 부문지표와 39개의 세부지표로 평가해 지난해 12월 자체평가를 발표했다. 이 중 D등급(보통 이하)으로 평가한 항목은 3개로 나타났다. 이 지표가 정확하고 객관적인 조사에 의해 분석되었더라도 제도의 자율성으로 인해 타 대학과의 비교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처럼 대학알리미 사이트나 대학 자체평가는 언론사 대학평가의 영향력을 낮추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하지만 언론사는 계속해서 대학평가를 실시, 확대하고 있다. 갈수록 대학 서열화 등의 문제점이 고착화될 소지가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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