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가난한 친구 이야기
서울의 가난한 친구 이야기
  • 전영진(정치외교3)
  • 승인 2010.09.1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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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에 다녀왔다.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었다. 20대의 시작인 군 생활 2년을 내내 함께 해준 친구였다. 힘들어하는 나를 다독이며 격려해 준 친구였지만 그는 나에게 한 번도 기댄 적이 없을 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가는 길은 마냥 설레기만 했다.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서울이라는 시끌벅적한 동네에서 홀로 꿋꿋이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학점에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너무 볼품사나워 보였다. 서울의 중심에서 꿈을 외치는 친구의 열정은 분명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지만 나의 환상이 거품처럼 꺼져버리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버스터미널에서의 감격적인 만남을 뒤로한 채 그는 나를 고깃집으로 데려갔다. 한 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식당이었다. 하지만 그는 괜찮다고, 너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고, 그러니 서울에서 지낼 동안 돈 걱정은 하지 말라며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적당히 흘려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밥을 다 먹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그의 신발을 보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검정색 신발에 누런 테이프가 칭칭 감겨있는 게 아닌가? 이유를 물어보았다. 일 때문이라고 했다. 테이프를 감더라도 오늘같이 비가 오면 신발에 물이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그는 신발 살 돈까지 아껴가면서 힘들게 살고 있었다. 내가 서울에 간 것이 미안했다. 친구의 사정도 모르고 1인분에 1만3천 원이나 하는 고기를 얻어먹고 좋아했으니 말이다. 그날 저녁 서울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내 마음 속 빗물처럼.

힘든 환경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느냐는 주변의 말에 나는 공감할 수 없다. 친구는 비참하게 살아갈 뿐이다. 잠을 아껴가며 하루 3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월급은 2백만 원을 넘지 못한다. 이마저도 어려운 집안 형편에 돈을 보태고 개인 생활비를 충당하면 턱없이 모자란다고 했다. 이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게을러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서울에는 내 친구와 같이 비정규직의 삶을 사는 사람이 넘쳐난다. 내 친구처럼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이 미달될 경우에는 직업의 안정성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가장 기초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살 수 없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빈부를 떠나 모두가 노동에 종속될 수밖에 없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체감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먹고 사는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물론 풍요와 가난은 필연성의 개념이다.

그럼에도 왜 빈부의 격차가 극심할 수밖에 없는가? 혹시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캠퍼스의 낭만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괜스레 눈물이 났다.

친구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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