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기
느리게 걷기
  • 임기덕 교육부장
  • 승인 2010.09.1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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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며칠 전 개강한 것 같은데 부지불식간에 2주가 훌쩍 지나갔다. 여름방학 동안 쥐죽은 듯 한산했던 학교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 각 강의실, 중앙도서관, 구내식당, 천마로, 거울못 등 장소를 불문하고 캠퍼스 곳곳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길을 가면서 사람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펴본다. 발랄한 사람, 진지한 사람, 초조해 하는 사람, 그냥 무덤덤한 사람으로 가지가지다. 특히 무언가에 엄청 바쁜 듯 뛰어다니는 사람의 얼굴에 눈길이 간다. 필자 역시 신문사에 있으면서 종종 바쁜 상황을 마주하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가는 것이다.

필자는 평소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그중에서도 ‘느리게 걷자’라는 곡을 좋아하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 들으면 제격이다. 일종의 자기 암시를 위해 듣는다고 할까.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아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보고 지나치겠네. (중략) 점심때쯤 슬슬 일어나 가벼운 키스로 하루를 시작하고 양말을 빨아 잘 펴 널어놓고 햇빛 창가에서 차를 마셔보자.”

노래가사가 참으로 익살스럽다. 하지만 예사말로 들리지 않는다. 다들 알다시피 세상은 속도감 있게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은 촌각을 다투는 경쟁의 시대 속에서 ‘빨리 빨리’를 외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시대적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언제 패배자 낙인이 찍힐지 모른다. 속된 말로 ‘빡센’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대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취업이 날로 어려워지는 탓에 학점 관리며 높은 어학시험 성적, 자격증 취득, 봉사활동에 실무 경험까지 이것저것 해야 할 것이 많아졌다. 이것 역시나 속도전이다. 기업이 원하는 양질의 인재가 되는 것이 지상 최고의 가치가 돼버린 탓에 강의실이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되고, 어학시험 성적을 높이기에 바쁘고, 도서관에서 매일 살다시피 해야 한다.

이렇게 죽을 만큼 뛰다 보니 마음의 여유는 없어지고, 주변은 물론이거니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력마저 사라진다. 그러다보면 조바심이 생겨 안절부절 못하게 되고, 잘 할 수 있는 일도 그르친다.

현재의 상황을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마음의 평온을 찾는 방법은 있다. 지금이라도 하던 일을 손에서 잠시 내려놓고 한 템포 쉬어보자. 주변을 살펴 평소에 눈길을 주지 못했던 대상에 관심을 가져보자. 선선한 가을바람을 쐬며 산책을 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오늘 하루만은 느리게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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