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격(校格)을 높여다오
교격(校格)을 높여다오
  • 편집국
  • 승인 2010.09.1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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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유행하고 있는 신조어 중 하나가 이른바 ‘국격(國格)’이다. 이 용어는 우리나라가 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 결정된 이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에서 치적(治積) 홍보와 국민통합용(?)으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행정안전부의 설명에 따르면, 국격이란 ‘국가 및 구성원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품위와 격조’로서G20 개최를 계기로 ‘선진 일류국가로서의 국격 향상을 위해 범국가적으로 힘을 모으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이와 더불어 따라다니는 것이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세계 12위)나 대통령이 존경받는 지도자 세계 10인 중에 7위라는 등의 자랑스러운 기사 내용들이다.

‘국격’을 둘러싼 이와 같은 전후 문맥을 헤아려보면, 국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대상은 결국 ‘국민’이다. 경제적 대국에 살면서, 더군다나 위대한 지도자를 모시고 사는 황송한 국민들이 그 격에 맞는 반응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국격 담론의 정치적 의도일 것이다.

문제는 정부 당국에서 국격을 논할 때마다 각오를 다져야 할 국민들이 오히려 실소(失笑)를 금치 못한다는 사실이다. 구태여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세계 180개국 가운데 39위라는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한국 상류사회의 도덕성은 들여다볼수록 가히 경이롭다.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는 비리와 부도덕성의 만화방창(萬化方暢)이고, 그것도 모자라 현직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무원들은 현대판 음서제의 실상을 국민들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청문회를 통과할 후보자가 별로 없는 나라에서 국격을 논하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국가지도자들이 국격을 이야기할 때, 국민들은 국격을 말하는 저 입들이 한없이 수치스럽다. 이쯤 되면 ‘국격’은 국가의 격조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간격을 뜻하는 ‘국격(國隔)’이 된다.

한 집단의 격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통해 명확하게 확인된다. 구성원들이 자기 공동체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면, 이미 그 집단은 일류인 것이다. 사람에게 인격(人格)이 있고 국가에 국격(國格)이 있다면, 학교에는 교격(校格)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하게 교격의 궁극적인 시금석은 학교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들의 긍지이다.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공동체에 자부심을 갖지 못한다면, 집단은 결코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우리 대학교는 오랫동안 재단이 없는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전환기는 기대와 더불어 동요와 불안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이 안정되지 않은 기간을 성공적으로 넘는 방법은,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투명한 비전과 합리적인 의사소통이다.

우리 대학교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이유들을 아는 일은 공동체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 된다. 구성원들을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변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잘못된 관행은 청산하되 변화의 방향은 투명하게,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

구성원 전체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이유가 학교 당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돌려세우는 명문이 될 수는 없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말은, 다수의 양식(良識)에 대한 인류 역사의 아주 오랜 경험이자 믿음이다. 하물며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밀실이 아닌 광장에서, 캠페인이 아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우리 대학은 진정한 명문 사학으로 거듭날 수 있다.

지역과 더불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세계 수준의 지역 거점대학에서, 더군다나 인류를 위해 기프트 플랜(Gift Plan)을 준비하는 대학에서 나이든 환경미화원들이 천막을 치고 고소를 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우리 학교의 교격과 변화의 방향에 대해 재삼 생각하게 만든다.

교격(校格)을 높인다는 그 많은 일들이 모쪼록 구성원들 사이의 간격을 확인하는 교격(校隔)이 되지 않기를, 그래서 영남대학교가 자랑스러운 ‘나’의 대학, ‘우리’의 대학이 되길 참으로 간절하게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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