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정체를 밝혀라?
네 정체를 밝혀라?
  • 박주현 취재부장
  • 승인 2010.09.01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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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대학교 자유게시판(자게)이 실명제 여부를 놓고 열기가 뜨겁다. 우리 대학교 커뮤니티에 적합한 이용방법을 묻는 설문조사가 실시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익명제를 고수할 건지, 고정 닉네임제를 도입할 것인지, 실명제를 도입할 건지를 묻는 조사다. 8월 31일 오후에 모니터한 결과, 고정 닉네임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익명제를 유지하자는 의견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자게 이용방법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자게 이용방법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바로 자게가 우리 대학교의 여론장으로 발돋움했기 때문이다. 총장이 ‘상경대 학생들은 수강신청하기가 어렵다’는 자게 글을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상경대 학장을 만나 해결한 일화가 유명하다. 취재 차 교직원들을 만났을 때에도 학생인 나보다 더 자게 여론을 주의깊게 보는 사람이 많았다.

자게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아진 만큼 자게 여론을 장악하려는 이도 많아졌다. 매년 총학생회 선거 때만 되면 양 선본을 비난하는 여론몰이가 한창이다. 몇 달 전에는 여학우를 ‘00녀’라고 이름붙이며 마녀사냥이 진행됐다. 자게의 자유로움 때문에 숨통이 트였던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악플에 눈물흘리고 여론몰이에 상처받는 학생들이 늘어난 것이다.

한편 자게의 글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고 있다. 학교 측은 별도의 삭제기준과 신고횟수를 참고해 사전통지 없이 게시글을 삭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게는 운영자가 검열을 끝낸 게시글만 ‘자유로운’게시판이었던 것이다.

실명제 논란도 운영자의 자게 장악력을 키우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익명으로 쓴 글이 통보없이 삭제되는 것, 한 논객이 고정 가명이든 실명이든 특정 이름으로 틀어박힌다는 것, 그것은 보이지 않는 힘인 운영자를 보이는 힘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악플러의 권력이 고스란히 운영자에게 옮겨간 것이다.

최근 선플달기 운동이 한창이다. 인터넷 악성댓글(악플)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댓글, 즉 선플을 달아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운동이 시작된 지 4년만에 선플 개수가 무려 38만5천3백45개를 넘어섰다. 민들레 홀씨처럼 인터넷 세상에 수십만 개의 온기를 퍼뜨린 것이다. 악플러를 선플러로, 네티즌을 인터넷 게시판의 주인으로 만든 것이다.

오늘도 자게는 시끌벅적하다. 개강의 분산함이 자게에도 그대로 옮았다. 오늘도 지겨운 편가르기 토론, 게시글 가득 찌질함이 보인다. 하지만 내일 1교시 수업인데 어서 자자며 서로의 건강(?)을 챙기는 모습부터,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데도 10년지기친구같은 푸근함까지…….그것이 자게의 매력이다. 선플, 그것만이 우리의 자게인을 지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자게를 지킬 수 있다. 자게는 그야말로 운영자로부터, 여론몰이꾼로부터 자유로운 ‘자유’게시판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자게에 눈팅말고 선플 하나 남기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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