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인권
빈곤과 인권
  • 임재홍 교수(법학전문대학원)
  • 승인 2010.09.01 1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익숙해진 것 중의 하나가 사회 양극화 현상이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여러 상반된 모습을 보고 있다. 한편에는 부자 감세나 기업인 우대와 같은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촛불시위에 대한 야만적 탄압과 용산 세입자에 대한 군사작전을 방불하는 진압작전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라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원하는 미래상을 제일 잘 보여주는 것이 마가렛 대처 전영국 수상과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란 생각이 든다. 마가렛 대처가 1979년 총리에 오른 이후 10년안에 최고 소득세율은 83%에서 40%까지 줄었다. 최고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레이건이 1981년 의회 연설에서 부유층에 대한 세금 감면이 투자 유발효과를 낼 것이고, 고용이 창출되면 노동자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도 크게 보면 이 범주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들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계층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비율)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소득 5분위 배율의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2006년 6.6배이던 것이 2009년에는 7.7배가 되었다. 상대적 빈곤율도 매년 확대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일반화는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고, 20-30대 청년 백수들이 넘쳐 나고 있다. 비정규직처럼 이제 빈곤도 일상화되어 버렸다.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성별, 학력별, 연령별로 작용하고 있다. 여성, 청년층과 고령자, 저학력자 계층에서 빈곤층이 증가하고 있다. 추정하건데 이들 계층에서 비정규직과 실업이 많고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들 빈곤계층은 다시 교육이나 의료, 주거에서도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빈곤의 악순환이 작동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정의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심각한 문제는 이를 해결할 책임 있는 정부가 없다는 것이다.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서민을 챙기고 있으니 말이다. 추석을 앞두고 ‘친서민 정책 시리즈’가 쏟아진다는 신문기사도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잘못된 거래 관행을 고치려고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권을 잡기 위해 전시용으로 내세운 서민, 근로자 정책은 헛공약(空約)에 그친 예가 많았다. 오히려 서민을 위한답시고 내놓은 공약을 빌미로 부동산부자와 재벌만 온갖 특혜를 독점한 경우도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자 시절 반값등록금을 약속한 바 있었다. 그런데 대학의 등록금이 동결된 적은 있어도 인하된 예는 없었다.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인 아이린 칸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인권을 말했다. 그는 인권을 향상시켜야 빈곤을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어야 하고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하며 주거할 수 있는 주택이 있어야 한다. 이래야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누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주거권, 노동권, 의료권, 교육권을 보장하면 되는 것이다.

차별을 시정하고 인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단지 국가만의 임무는 아니다. 기업과 대학도 차별행위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령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노인의 인권도 중요하다. 특히 연령을 이유로 노동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행위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