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을 허하라
창의성을 허하라
  • 김명준 편집국장
  • 승인 2010.09.0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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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온통 창의성 이야기다. 버스 안에서도 인터넷 검색을 하고 굳이 목적지 가는 법을 외우지 않아도 지구 주위를 도는 인공위성이 길을 알려주는 요즘, 더 이상 보고, 듣고, 읽고 알 수 있는 지식만으론 남들과 경쟁할 수 없다. 기존의 정보를 수집·가공해 새로운 가치 있는 정보를 창출하지 않고서는 앞서갈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이처럼 창의성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이 시대의 화두다.

우리 대학교도 최근 ‘Y형 인재 육성’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학생들의 인성, 진취성 등과 함께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공대의 경우 2001년도부터 공학교육인증제도(ABEEK)를 도입해 학생들의 전공과 관련된 전문성은 물론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ABEEK 인증 프로그램에는 학생들의 공학적 전문성 함양과 창의성 개발을 제도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내기 위한 수많은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우선 학생들의 공학적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교양과목 이수를 최소화하고 전공과목의 비율을 대폭 늘리는 한편,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할 과목의 개수 또한 늘렸다. 또 창의성 개발과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작성과 선 수강 제도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본래의 좋은 취지와 달리 ABEEK 인증에 부정적인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ABEEK 인증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제도자체는 빈틈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원래 학생과 교수의 상담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고 정규 교육과정 외 다양한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선수강지도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학습을 가로막는 역할만 하고 있다.  ABEEK 인증 프로그램에는 교수와 학생 간의 1대1 상담을 통해 소통하도록 돼 있는 선수강지도의 경우 실제로는 강의실에 수십명의 학생들을 앉혀놓고 ABEEK 인증 획득을 위한 수강신청가이드라인을 설명하는 데 그치고 있다. 심지어 ABEEK 인증이 요구하는 과목 외 다른 교양과목을 들을 시, 정상적인 졸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당초 ABEEK 인증의 목표 중 하나였던 창의성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창의성개발을 목적으로 정규 교과목에 편성한 공학설계과목은 학생들에게 그저 ‘듣지 않으면 졸업 못하는’ 수많은 과목 중 하나에 불과하다.

너무 복잡하고 틀에 박힌 제도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학습권과 창의성 개발을 방해한다. 음악으로 이야기 하자면 엄격한 연주방법과 멜로디를 악보를 통해 규정하고 있는 오케스트라음악에서는 연주자 개개인의 창의성이 발휘되기 어렵다. 음악에서의 창의성과 독창성은 작곡가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연주자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그에 비해 재즈음악은 연주자 개개인의 독창성과 특색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음악을 만든다. 창의성이란 엄격한 ‘룰’ 안에서는 나오기 힘들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엄격한 ‘룰’이 아닌 구성원들 간의 소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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