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로서는 ‘누구나 노력만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던가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 될 수 있다’라고 믿고 싶은 주문(mantra)이 있다. 그런데 과감히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 말콤그래드는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이 같은 우리들의 순진한 생각을 쑥스럽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성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고 본다. 재능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에 불과하며 거기에 충분한 시간(10,000시간)의 훈련이 필요하고, 적절한 시기에 태어나야 하며 문화적으로 적합한 환경에서 자라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일 만 시간의 법칙과 마테복음의 법칙이다. 어느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최소한 하루 3시간씩 10년을 투자해야 하며, 특별한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테복음의 법칙이란 성경의 마테복음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구절을 원용하여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설명하며, 시작은 비록 작지만 특별한 기회를 얻은 사람이 그 기회와 결과의 누적으로 인하여 성공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늘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라 치부하던 주입식 교육도 일만 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가 교육공학자가 아니어서 학문적인 근거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아니니 논리적인 비약이나 모순이 있더라도 미리 양해를 구한다. 창발적 교육을 해야 한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하지만 창의력은 거저 생겨나는 것인가?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것만 상상할 수 있다’ 고 하지 않는가? 주어진 재료가 궁핍한 곳에서 창의적인 발상이 떠오를 수 있을 것인가? 아이패드의 스티브잡스가 우연히 창의적인 생각을 하여 아이-시리즈를 히트 시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나 순진하다. 스티브잡스는 요즘 소위 말하는 ‘스펙’은 딸리지만 스탠포드대학에서 디자인분야의 다양한 강좌를 청강하는 등 이미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일 만 시간을 투자한 사람이다. 혁신은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힘을 발휘한다. 필자가 속한 공학계열의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재료는 주입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는 어떠한가? 대학은 자율성이 많다. 학생 스스로가 수강 과목을 선택하고 수업시간도 조정이 가능하며 수업 참석여부도 학생이 알아서 하는 일이므로 ‘너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네가 열심히 하면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너의 책임이고 나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라는 자세로 임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다. 학생들이 싫어하고 피하려 해도 진정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이끌어 주고 때로는 욕을 먹을 각오를 해야 하지 않을까? 유명한 학원강사도 자기 자식을 가르칠 때는 손부터 올라간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애정이 있어야 한다. 나를 믿고 따르면 된다는 강력한 신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대학의 자율성을 빌미로 방치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심지어는 ‘꿈은 크게 꾸어라. 그러면 그 크기에 비례하여 얻을 것이다.’라는 헛된 망상까지 심어주는 것은 죄악이다. 이것은 애정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행동이다. 현재 상황을 정확히 말해주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채찍질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성공은 똑똑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성공이 단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성공은 주어지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기회를 얻은 사람이고, 동시에 그 기회를 활용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성공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최소한 기회를 잡았을 때 활용할 수 있도록 잘 정제된 일만 시간의 훈련을 제공해 주는 교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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