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앓는 낙동강, 그 현장을 가다
몸살 앓는 낙동강, 그 현장을 가다
  • 이광우 기자
  • 승인 2010.06.0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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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본지는 우리대학 이승렬 교수(영어영문학과)와 영어영문학과 학우들 그리고 시민단체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사람들’(낙동대구)의 회원들과 함께 ‘4대강 살리기’ 사업 현장 답사에 나섰다. 일정은 대구 인근의 사업구역인 낙동강 22공구 달성보와 23공구 강정보를 중심으로 낙동강 일대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경덕왕은 이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답사단은 맨 먼저 강정보 공사현장의 아래쪽에 위치한 화원유원지를 찾아갔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이곳은 신라 35대 경덕왕이 상화대라는 행궁을 지을 만큼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화원유원지 옆을 지나는 사문진교 아래 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밧줄에 꽁꽁 매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수질감시선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인근 성서공단으로부터 흘러온 오염물질이 쌓인 오니토를 발견했다.
이어 화원동산으로 올라간 일행은 강변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무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검은색의 강물이 알고 보니 금호강의 지류인 진천천에서 흘러들어온 공장 폐수였던 것이다. 이처럼 낙동강의 주요 오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지류 하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본류를 공사하는 것이 낙동강을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답사단은 화원유원지의 팔각정으로 올라갔다. 팔각정에 올라서자 성서공단과 달성습지 그리고 저 멀리 강정보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강정보는 10~14m정도로 만들어져 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높았다. 실제로 지난 08년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소개하며 1~2m의 소형보 총 5개를 설치할 것이라며 한반도 대운하사업은 전구간 6m의 대형보가 필요하므로 다르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모두 당시 대운하사업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강정보가 만들어지면 이곳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완전히 바뀐다.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훼손되는 달성습지는 인공으로 새롭게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낙동대구 카페지기인 정수근 씨는 “아직까지는 예전 하천의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며 아쉬워했다.
한편 강정보와 달성보로 인해 수위 상승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 계명대학교 배상근 교수(토목공학과)가 “강정보와 달성보로 강물을 가두면 지하에 삼투압이 발생해 저지대인 성서공단 지역 일대가 침수된다”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하지만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 계속해서 갈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눈을 감고 들어보는 마지막 자연의 소리=이후 답사단 일행은 강 건너편의 모래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곳곳에 삵과 고라니의 발자국이 있고 팔각정이 저 멀리 조그마하게 보이는 이곳은 강정보 공사현장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는 조만간 강바닥을 6m 정도 파내는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낙동대구의 한 회원은 “아직 공사가 완료 되지 않아 온전히 남아있는 자갈들과 동물 발자국 등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는 곳이다”며 잠시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느껴보자고 제안했다. 우리 모두는 눈을 감고 여울소리와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가 만들어 내는 자연 본연의 노래를 들었다. 한편 이제 곧 포크레인 소리로 뒤덮일 이곳을 생각하니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달성보, 가장 빠른 공사 그리고 가장 삼엄한 경계=잠시나마 자연을 느낀 우리는 4대강 사업 공구 중 가장 빠른 공정률을 보이고 있는 달성보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많은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자주 달성보 공사현장을 찾다보니 경비가 삼엄하다는 말을 버스 안에서 들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달성보 공사현장에 도착하자 들었던 대로 관계자들이 막아서기 시작했다. 특히 놀랍게도 한 관계자는 “이미 화원유원지를 방문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 1시간 전부터 기다렸다”고 했다. 이어 그는 “허가를 받지 못했으니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며 공사현장을 보지 못하도록 했다. 답사단은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한 끝에 공사현장 입구 옆 공터에서 멀리나마 달성보를 볼 수 있었다.
공사현장을 보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인간중심’이라는 표어와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나 볼만한 대형 타워크레인이었다. 이윤정 씨(영어영문3)는 이를 보며 “영미문학비평이라는 수업 중 ‘잘려진 손’이라는 시를 배웠는데 그 시가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기자가 현장을 카메라로 담는 동안 관계자들 역시 뒤에 서서 답사단을 카메라에 담으며 인원을 파악하고 있었다. 가장 빠른 공사 속도만큼이나 가장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는 곳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팔만대장경을 옮기던 개포나루터는 역사 속으로=달성보 공사현장을 떠나 인근에 위치한 도동서원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5대 서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곳은 대구시티투어의 한 코스로 매주 토요일이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2001년부터 도동서원의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화가 천광호 씨의 해설을 들으며 도동서원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천 씨는 해설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서원 앞 정자에 대해 “서원 앞에 있던 등나무가 베어지고 만들어진터라 정자에 애착이 가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그는 “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진행돼 골짜기 하나하나에 서려있던 전설을 이제는 말해 줄 수도 없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듣고 답사단은 도동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찾아가기로 했다. 강변은 강정보 앞 모래톱과 달리 진흙과 가는 모래로 가득했다.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곽상수 씨는 “매년 장마철이면 흙이 쌓여 퇴적되는 곳이라 밭이 즐비했다”고 밝혔다. 얼마 전까지 농사가 이뤄진 듯 주인을 잃어버린 밭엔 이랑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었고 잡초만이 무성했다. 한 학생은 밭에 남아있는 자그마한 감자를 캐보기도 했다.
예전에 개포나루로 불렸던 이곳은 이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루가 있던 당시에는 팔만대장경을 옮기기도 했다고 한다. 곽 씨는 “이곳은 어릴 적 헤엄치고 뛰놀던 추억이 담긴 곳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욕심이 생기고, 비닐하우스를 점차 늘려가다 보니 어느새 옆에 있던 새들은 사라졌다”며 “환경에 대한 인식을 하지 않았던 지난 세월에 대해 후회한다”고 했다.
곽 씨는 갑자기 우리들에게 강이 어느 쪽으로 흐르고 있는지 물어봤다. 우리가 보기에 강은 분명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강은 왼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물살이 전혀 없고 상당히 완만하게 흐르고 있는데 여기에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보를 만들면 물이 절대 흐르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며 답사단은 공사로 인한 환경파괴에 대해 잠시동안 생각해 보았다. 낙동대구의 회원 박종하 씨는 “영남대학교에 환경 동아리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며 “환경에 대해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답사할 수 있는 동아리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포나루터를 둘러본 뒤 일행은 부근 산등성이의 다람재에 올라갔다. 다람재에서 내려다본 도동서원과 개포나루터 그리고 굽이치는 낙동강은 정말 장관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강변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포크레인과 오탁방지막(부유 토사나 폐수 등의 확산을 방지하는 막)이 눈에 띄었다.
정수근 씨는 “이제 몇 년 후면 이런 장관을 보기 힘들 것이다. 낙동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이승렬 교수는 “4대강 사업의 찬성과 반대를 떠나 강이 무엇인가 체험하고 느끼면서 자신의 가슴에 남는 것이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루 동안의 낙동강 일대 답사를 마치며 답사단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류동암 씨(영어영문3)는 “개인적으로 찾아오기 힘든 곳에 오게 되어 참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낙동대구의 회원이면서 연극배우로 활동 중인 이상욱 씨는 “녹색인간 퍼포먼스를 하는 등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와보니 여러모로 많은 걸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답사단을 꾸렸던 정수근 씨는 답사를 마치며 “강은 이용의 대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강의 정서를 다시 되찾기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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