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엔 이치로(明円 一郞)
묘엔 이치로(明円 一郞)
  • 이광우 기자
  • 승인 2010.06.0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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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춘추사 문예진흥사업국장을 만나다
▲ 문예춘추사 : 1923년 1월 소설가 기쿠치 간이 창립한 일본의 출판사로, 일본을 대표하는 주간지인 '주간분슌' 과 월간 '분게이 슌 주' 그리고 월간 'CREA'등을 출판하고 있다. 사원의 초임은 월 25만 8천엔으로 업계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일본문화진흥회를 만들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을 비롯한 많은 문예상을 수여하고 있다.홈페이지 : http://www.bunshun.co.jp

‘용의자 X의 헌신’, ‘공중그네’ 그리고 ‘도시여행자’ 대학생이라면 대부분 한 번 쯤 들어봤을 일본의 유명 문학작품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일본의 유명 출판사 ‘문예춘추’가 수상한 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지난 1923년 창립된 문예춘추사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芥川龍介賞)이나 나오키 산주고상(直木三十五賞) 등의 문예상으로 유명한 출판사다. 본지는 지난 달 4일 일본 출판사 문예춘추의 묘엔 이치로 문예진흥사업국장 겸 문예편집국장을 만났다. 지난 1975년 문예춘추에 입사한 그는 기자와의 대화를 통해 지난 35년간 겪었던 수많은 경험담과 자신의 철학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편집진이 상당히 다루기 힘들었던 남자, 무라카미 하루키=기자와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였을까?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유명한 소설 ‘상실의 시대’를 꺼내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이 그의 대표작인 ‘상실의 시대’입니다.” 상실의 시대를 꺼내들며 시작된 묘엔 국장과의 인터뷰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이뤘다. 그는 신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았던 당시를 회상했다. “초창기 그의 문체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평가절하했습니다. 미국식 문체로 이루어진 터라 익숙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른 문인과의 사교도 전무하고 수많은 수상작을 수상하였지만 수상식에는 참여하지 않죠” 묘엔 국장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독특한 모습도 언급했다. 이어 그는 무라카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 비쳤다. “최근 ‘1Q84’로 다시 한 번 전 세계적인 일본문학 돌풍을 몰고 왔습니다. 아마 올해 또는 내년 노벨문학상을 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편집자와의 관계는 어떨까? 묘엔 국장은 “통상적으로 편집자와 작가는 상하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들과의 관계는 역전되죠. 작가들이 편집자의 위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며 웃으며 대답했다.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과 나오키 산주고상=문예춘추사에는 두 가지 대표적인 문학상이 존재한다. 오랜 전통과 유명한 작가를 배출해 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과 나오키 산주고상이다. 특히 2004년에는 오쿠다 히데오가 ‘공중그네’로 제131회 나오키 산주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묘엔 국장을 통해 일본 문학상의 대표격인 두 문학상에 대해 들어보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은 1935년부터 주로 예술소설(순수문학)을 수상하는 것으로, 문예춘추를 창간한 작가 기쿠치 칸의 친구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나오키 산주고상 역시 그의 친구인 나오키 산주고를 기리며 주로 대중문학에 수여합니다.” 두 문학상은 1년에 2번 수상하며 특히 재일교포 작가인 류미리 씨도 수상했다.(제116회 아쿠타가와 상-가족 시네마) 묘엔 국장에 따르면 현존하는 일본의 3백여개 문학상 대부분이 이 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심사는 공정성과 공평성에 중심을 두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와 키리노 나츠오 그리고 공지영=기자는 그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다. 제1회 아쿠타카와 상 수상자 후보에 올랐던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본 것이다. ‘인간실격’으로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는 평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동경했고 제1회 아쿠타카와 상 수상자 후보에 올랐으나 탈락했던 작가다. 당시 심사위원 중 한명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다자이의 문란한 사생활을 문제 삼아 낙선시켰고,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에게 배신을 느낀 다자이는 이후에도 수차례 참여했으나 결국 수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제2회 아쿠타카와에서도 탈락하고, 제3회는 ‘과거 후보자는 신청 불가’라는 신청 기준이 추가돼 결국 포기했던 다자이에 대해 묘엔 국장은 비교적 냉정한 답변을 했다. “인생의 고민거리에 대한 생각은 많이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 작가입니다.” 그는 이어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을 비관하고 자살한 후 10대와 20대 위주로 그의 삶을 동경하는 유행도 잠시 있었습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렇다면 그가 가장 추천하는 일본 작가는 누구일까? 묘엔 국장은 키리오 나츠오의 ‘그로테스크’를 꼭 읽어보라고 했다. “키리노 나츠오는 현재 여성의 정신세계를 정말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은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오랜 명망을 유지한 비결=80여 년간 일본 최대의 출판사라는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잠시 동안 고민을 한 끝에 대답했다. “대중의 눈높이를 잘 파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잡지사인 만큼 가급적이면 정치적 노선을 하나로 잡기보다는 유동적으로 맞춰나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또한 한 쪽 지면이 무겁거나 딱딱한 주제라면, 반대 지면은 흥미와 유머 위주의 내용으로 구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에도 불구하고, 문예춘추사의 유력 잡지인 정치·사회 월간지 ‘월간 문예춘추’는 젊은 독자층에게 외면 받고 있다. 젊은 세대에겐 주제 자체가 어려울뿐더러 대부분 또 다른 잡지인 연예 기사 위주의 ‘CREA’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묘엔 국장은 “가능한 한 중간중간에 재미있는 기사를 실으며 노력은 하고 있지만 사실상 젊은 세대를 끌어 모으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며 아쉬워했다.
◆편집자로서의 묘엔 이치로, 그리고 활자 인쇄물의 미래=24세에 입사 35년간 문예춘추사에 몸담은 그에게 편집자는 자신의 일생과도 같은 것이다. 그에게 편집자란 어떤 직책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 묘엔 국장은 우선 편집자의 의무에 대해 설명했다. “편집자는 재능있는 사람들을 발굴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배고픔을 견디며 창작의 고통을 글로 나타내는 신인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분명 어딘가에 제2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3년 후 정년퇴임을 앞둔 그는 대부분의 편집자와 달리 회고록을 쓰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흔하디 흔한 경험담에 질려가는 요즘 사람들은 편집자의 회고록을 읽지 않습니다. 저 또한 그런 책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기자는 그에게 킨들이나 아이팟, 아이폰 등 전자책으로 대표되는 E-BOOK의 활성화와 활자 인쇄물의 미래에 대해 들어보았다. 묘엔 국장에게 활자 인쇄물의 미래란 험난한 것이었다. 그는 “잡지, 신문, 책 그리고 편집자는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마다 일정한 역할이 있으므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임을 확신합니다”며 앞으로 활자 인쇄물에 닥칠 어려운 시기에 대해 전망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묘엔 국장은 일본 내에 알려진 한국문학 작가가 적은 것이 아쉽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공지영 씨와 신경숙 씨의 작품을 감명깊게 읽었다는 그는 한국문학의 특수한 배경이 매우 끌린다고 했다. “과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일본문학으로는 접하기 힘든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번역이 활성화 되어 일본 문학계에 널리 알려졌으면 합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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