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봉사에 도전해 보라
해외 봉사에 도전해 보라
  • 편집국
  • 승인 2010.05.1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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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나는 영남대 생명공학부에 입학하였다. 철모르던 1학년 시절, 헛되게 1년을 보냈고, 이렇게 4년을 보내선 안 되겠다는 마음에 내 삶의 터닝 포인트를 찾기로 했다. 그리고 그 터닝 포인트로 난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을 가기로 마음 먹었고, 2009년 2월 아프리카 가나로 가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기를 3일, 가나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내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어린 아이들이었다. 초등학교에 가서 공부해야할 나이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하나같이 머리에 초콜릿이나, 물봉지, 과자를 이고 있었다. 
우리가 탄 차가 지나가자, 창문너머로 우릴 바라보며 초콜릿을 외치고, 물이라고 외쳐대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아프리카에 왔음을 실감했다. 가나에서는 물 한 봉지에 50원 밖에 하지 않아서 하루 종일 팔아도, 천 원의 이익이 남기 힘들다.
가나에서는 초등학교 취학률이 70%로써 다른 아프리카에 비해 교육의 혜택을 받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중학교를 가는 학생들은 거의 드물다.
그런 가나에서 나는 주일에 학생들에게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주말에는 직접 다른 동네를 방문하여, 어린이들이 흥미를 가질 영화감상이나, 동요들을 가르치고 또한 피아노도 가르쳤다. 한국어를 가르칠 때 내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도 아이들은 커다란 눈으로 나를 쳐다봐 주며 열심히 따라해 주었다.
특히 내 친한 친구 레베카는 내가 한국에 갈때쯤 자기가 쓴 쪽지 하나와 아프리카 전통의상을 선물로 주었다. 서툰 한국어로 ‘박민장언니, 감사하미다’라고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를 보고 얼마나 가슴이 찡하고 귀엽게 보이던지..
그 외에도 가나에서 했던 여러 가지 봉사활동은 내가 한국에서 해본 적이 없던 경험이었기에 더 값졌었다. 체육관을 지으며, 가나 친구들과 같이 콘크리트를 비비고, 나르고 페인트칠을 했던 일, 가나 청소 캠페인을 하며, 같이 쓰레기를 줍던 일, 의료혜택이 미치지 않는 시골에서 의료봉사 등. 사실상 나의 이 작은 두 손이 그런 일들에 커다란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내가 함께 해 주는 것으로 너무 좋아하고 고마워 했기에, 나 또한 지난 1년이 너무나 행복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학업의 스트레스로 지쳐가거나 똑같은 일상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면 아프리카로 해외봉사에 도전해 보라. 새로운 기쁨을 얻을 것이다. 나의 생활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의 작은 두손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것인지 분명히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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