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의 하멜표류기
2010년의 하멜표류기
  • 박주현 취재부장
  • 승인 2010.05.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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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대만을 출항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항해가 신속히 끝나기를 빌었습니다.…그러나 저녁이 되면서 폭풍우가 포르모사 섬으로부터 우리에게 접근해 오더니 밤새도록 바람이 더욱더 심해져 갔습니다.…커다란 위험이 뒤따랐지만 우리는 마침내 섬 뒤에 닻을 내릴 수가 있었습니다…중국 병사들은 여전히 해안가에 나와 마치 굶주린 이리떼처럼 우리를 나포하려고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문은 1668년도에 발간된 하멜표류기의 일부이다. 하멜표류기는 14년간의 억류생활을 기록한 것으로 한국의 지리·풍속·정치·군사·교육·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굶주린 이리떼에게 포위당한 한 마리의 사슴과 같은 조마조마한 하멜의 마음이 눈에 훤하다.
불과 3백여 년 전만 해도 미지의 세계였던 대한민국이 어느새 외국인이 바글거리는 곳으로 바뀌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거주 외국인 비율이 1%로, 1백 명 중 1명은 우리와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이방인인 것이다.
이러한 세계화 바람은 우리대학도 빗겨가지 않는다. 국제교류팀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포함한 외국인 유학생은 모두 1천여 명을 훨씬 웃돈다. 이는 전체 학부대학원 생 중 3%를 차지하는 수치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신기함은 촌스러움으로, 무관심이 도시인의 매력인 양 옆 자리에 앉은 외국인 유학생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외국인 유학생 무리가 형성되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한 강의실 안, 공간의 반은 한국인 학생들이, 반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그 사이로 지나갈 때면 국경선을 넘나드는 기분까지 든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옛말이 있듯이 어설픈 동침에서 오해가 싹튼다. 자유게시판에 ‘중국인’ 또는 ‘유학생’이라고 검색하면 공공질서를 지켜달라는 글과 더불어 학내에 왜 이렇게 많냐는 조소가 섞인 글이 이어진다. 동북공정 등 정치적인 문제가 대두되면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글의 어투도 더욱 강경해진다. 외국인 유학생 또한 유학생 모임에서 들은 유학생 대상 범죄에 대해 촉각이 곤두선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사전 취재 차 인터뷰를 했던 한 외국인 유학생은 한국인 학생으로부터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다며 기자를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묘한 감정 대립은 사회 전반에도 찾아 볼 수 있다. 최근 법무부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불법체류자와 ‘우범 외국인’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방침을 세우자, 이주민인권단체들이 ‘마녀사냥’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가 말을 걸어주길 바라면서도 낯설음에 불신의 벽을 쌓고 있다.
우리가 옷깃이 스치는 인연을 만나기 위해 옷매무새를 가다듬듯이 1천여 명의 외국인 유학생과 나눌 인연을 위해 한마디 외국어 인사말을 준비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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