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름다움
작은 아름다움
  • 편집국
  • 승인 2010.05.1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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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졸업앨범 촬영에서 학생들이 많이 모이지 않아, 의아함에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바빠서, 귀찮아서 등 예상할 수 있는 여러 말이 오가던 중, 한 학생이 끝말을 흐리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겠지요. 졸업하고 나면 확 바꿀거니까요.’라고 말했다. 그 소리에 와 웃음이 터졌고 몇 선생님들은 이해하지 못한 듯 갸우뚱하기도 했다. 하긴 성형이 대세라면 대세이니까. 필자는 얼마 전 대상포진으로 피부과에 간 적이 있었다. 치료가 끝날 때쯤, 피부과 전문의는 나를 앉혀놓고 짧은 시간이지만 미에 대해 특강(?)을 하였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무척 많은데, 옷을 잘 입어서 아름다운 사람, 착해서 아름다운 사람, 많이 배우고 알아서 아름다운 사람... 등. 난 순간 착각에 빠져 내가 가진 어떤 아름다움을 말하려는 걸까 궁금했다. 하지만 전문의의 마지막 말은 ‘내가 다른 아름다움은 가졌지만, 피부의 아름다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멀쩡한 피부를 위해 돈을 쓸 뻔한 순간이었다. 
가끔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취업 상담이 주류를 이루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인간관계에 대한 상담이 많다. 사실 인간관계가 얼마나 어려운가.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인지도 모르니, 이러한 상담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인간이 인간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가장 생산적이며 행복한 고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학생들과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여러 경우를 보지만 요즘 특별히 상담해 줄 내용이 궁해 곤란한 경우가 많다. 문제가 있다는 학생이 찾아와 상황을 설명하는데 대부분은 상당히 논리적이다. 상담을 올 정도라면 화가 나 있거나, 상처를 받아 경황이 없을 터인데도 말이다. 일의 경과를 꽤 치밀하게 제시하고 상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조목조목 분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잘못까지도 꽤 잘 알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나로서는 특별히 상담해 줄 내용은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단지 그냥 위로가 필요해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몇 번 겪다 보니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이 과거의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참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사람을 좋아하고 미워하고 또 회복해 나갔던 것이 저의 잘못과 나의 잘못을 일일이 따져가면서 했다는 기억은 별로 없다. 요즘 똑똑한 학생들과는 달리 어리버리하기 짝이 없었던 나는 한 번도 논리적으로 상황을 되짚어 본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가지지 못했다.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함이 저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한 순간에 다 날아가 버리게 했을 뿐이다. 그동안의 행위를 다 벌여 놓아 수학 공식처럼 +와 -에 의해 나온 결과가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그래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손해 본 적도 많은데 말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다. 내가 손해 본 적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용서받은 적이 훨씬 많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감사하게 된 경우가 훨씬 많다. 
대학 캠퍼스에는 수많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존재한다. 교수와 학생도 있고, 학생과 학생 사이에도 다양한 관계가 존재한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위해서 내가 반성해야 할 경우도 있고 또 상대가 잘못했을 경우도 물론 있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필요한 때도 많겠지만, 때로는 그냥 품어주는 너그러움이 진정 아름다움이 될 경우도 많다. 이 너그러움이 흔히 이야기하는 캠퍼스에서 있을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 상대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냥 품어주는 작은 사랑. 그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 나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 어딘가에서 들은 말인데, 어느 순간부터 내 맘속 깊이 두고 놓치고 싶지 않은 말이 되었다. 외면의 아름다움도 가꾸면서 내 안의 작은 사랑의 폭도 넓혀 가 보지 않겠는가. 우리 대학의 캠퍼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사랑의 아름다움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아름답게 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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